“두 번 운 국보1호… 문화재 행정-관리 거듭나는 계기 삼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일 03시 00분


4일 복구 1주년 맞는 숭례문
나선화 문화재청장 - 배기동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장 대담

4월 2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숭례문 앞에서 나선화 문화재청장(왼쪽)과 배기동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장이 복구 뒤 1년을 되짚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년 숭례문 관련 사태를 반성과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지금은 말보다 행동으로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라고 입을 모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4월 2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숭례문 앞에서 나선화 문화재청장(왼쪽)과 배기동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장이 복구 뒤 1년을 되짚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년 숭례문 관련 사태를 반성과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지금은 말보다 행동으로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라고 입을 모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4월 28일 오후, 숭례문은 울고 있었다.

비는 참 얄궂다. 청량한 봄비가 반가울 때도 있다. 그러나 요즘 같아선 추적추적 마음이 잦아든다. 이날도 처마 끝에 매달린 물방울에 울컥 서글퍼졌다.

고개 들어 숭례문을 바라보던 나선화 문화재청장과 문화재계 원로 배기동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장(한양대 교수)도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한참 말이 없었다. 4일 숭례문 복구 1년을 앞뒀지만, 흥이 날 리 만무할 터. 숭례문 복구 한 달 만에 단청 박락이 발견된 후 문화재 종사자들에겐 1년 내내 고개를 들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재 관련 구조적 비리 척결을 천명한 뒤 대규모 감사와 경찰 수사로 확대됐고, 급기야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이 취임 8개월 만에 낙마했다.

나 청장은 “솔직히 공직자나 학자로서든 기성세대이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배 위원장은 “숙제가 잔뜩 쌓였는데 잘못만 빈다고 뭐가 달라지나”며 “염치없어도 숭례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청장(이하 나)=먼저, 드릴 말씀이 있다. 복구 1년을 맞지만 기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취임 전 일이라고 회피할 생각도 없다. 송구할 뿐이다. 다만 이런 계기로 조언도 듣고, 공개적으로 반성과 다짐을 전하고 싶다.

배 위원장(이하 배)=숭례문은 한국의 자화상이다. 우리 수준이 딱 이만큼임을 아프게 깨쳐야 한다. 우리 모두 기존 시스템에 안주해 면밀하지 못했다. 뭣보다 공직자 그리고 문화재 관리는 도덕성이 바탕이 돼야 한다. 국민은 숭례문 단청이 벗겨진 것보다 그런 가치관이 흔들렸다는 데 더 실망했다.

나=문화재청 내부에서도 실망하는 이가 많은데, 국민은 오죽하겠나. 사후약방문이긴 해도 도덕적 부분만큼은 엄격한 잣대로 보겠다. 과하다, 너무하단 소릴 듣더라도 지금은 일벌백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리는 법적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강력 대응하겠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임하겠다.

배=자정능력을 키우려면 극약처방도 필요하다. 다만 시스템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불법은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 문화재 관련 업체가 얼마나 영세한지도 이번 기회에 함께 드러났다. 검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살펴야 한다.

나=사태의 발단이 된 단청 문제는 현 체제의 허점이 드러난 사례다. 전통기술을 되살리려던 의도는 좋다. 하지만 능력의 한계를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다. 이를 점검하는 방식 또한 안일했다. 단청 전통기술 복원은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총력을 기울이겠지만 앞으로도 최소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이게 우리의 현주소다.

배=20세기 성장개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 문화재는 속도전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요즘 국민의 눈높이는 선진국 수준이다. 정부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 외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억지소리라도 듣는 귀는 열어 둬야 하는 법이다. 단청 제외하고 목재나 기와 등 숭례문 복원에 대한 다른 지적은 문화재청 입장에서 억울한 면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공직자의 업이다. 단청장이나 대목장 같은 중요무형문화재도 공직(公職)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

나=무형문화재는 선정 과정을 모두 공개해 투명성을 으뜸으로 삼겠다. 쇼를 하자는 게 아니다. 모두가 공감하도록 선발심사를 점수로 매길 예정이다. 이 역시 서둘지 않을 생각이다. 지속적으로 공청회를 열고, 계속 고쳐가며 합의안을 내놓겠다.

배=수리자격증 불법 대여 논란도 큰 화두다. 사실 문화재계의 오랜 골칫거리였지만 해결이 안 되다 보니 관행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틀린 건 틀린 거다. 어렵다고 손대지 않으면 갈수록 어려워진다. 꾸준히 고쳐나가는 의지를 보여 달라.

나=채찍과 당근을 병행하겠다. 앞으로 불법 대여는 소지자건 업체건 자격정지를 넘어 재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성실하고 공정한 이들은 사업 참여 기회가 폭넓어지는 환경을 만들겠다. 문화재는 소중한 국민의 자존심이다. 이를 대신 관리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도록 하겠다.

배=모든 종사자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한 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권위도 회복해야 한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국민의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여실히 드러났다. 문화재청이 맞는 말을 해도 듣질 않더라. 그건 신뢰가 깨졌다는 증거다.

나=대책으로 수리실명제나 문화재복원 현장공개를 내놓은 것도 그런 이유다. 전시행정을 하려는 게 아니라, 보는 눈이 많아져야 더욱 신중해진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숭례문이 부끄러운 국보 1호로 남지 않는 길은 이제부터 진정성을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다.

배=국민도 더욱 엄중히 지켜보고 감시해야 한다. 이 마음 아픈 사건들을 절대 잊지 말자. 치유는 망각이 아니라 극복에서 싹이 자란다.

       
       
▼ 단청-목재 등 부실논란에 관계자 자살… 사고와 비리 줄이어 ▼
복구 뒤 바람 잘 날 없던 1년


단청 박락에서 대규모 감사, 관계자 자살에 횡령 입건까지….

4일 복구 1년을 맞는 숭례문은 지난해 성대한 기념식 이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복구 한 달 만에 단청 박락이 발견된 뒤 기와 부실까지 거론되며 숭례문을 둘러싼 문화재 전반은 ‘총체적 비리’의 집합체로 비난받았다.

△단청=숭례문 단청을 실전된 전통기술로 복원하겠다는 시도는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일부 벗겨진 단청에 대해선 현재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자였던 홍창원 단청장은 2월 다른 문화재 보수공사에 불법으로 자격증을 대여해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문화재청은 ‘제대로 된’ 단청 기술 복원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최소 몇 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목재=단청에서 촉발된 숭례문 사태는 목재에서 논란이 가장 컸다. 초기엔 기둥의 갈라짐 현상이 지적됐으나 이는 목조 건축물의 일반적 현상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러시아산 나무 사용 및 기증목 횡령 여부였다. 신응수 대목장(72)이 국민이 기증한 나무 대신 값싼 러시아산 나무를 썼다는 의혹이었다. 3월 국립산림과학원의 DNA 조사 결과 국내산인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이 과정에서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던 충북대 박모 교수(56)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경찰은 신 대목장이 숭례문이 아닌 광화문 복원 때 횡령을 저질렀다며 입건했으나 신 대목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기와=겨울철 동파 가능성이 제기됐다. 전통방식을 재현한다고 수제로 만든 기와는 흡수율이 높아 얼음이 어는 시기에 취약하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기와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번 겨울이 비교적 따뜻했기 때문”이라며 안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수리자격증=오랜 병폐였던 수리기술자 자격증 불법 대여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숭례문 복구 과정에선 혐의를 찾지 못했지만, 다른 여러 현장에서 자격증 소지자들이 관련업체에 자격증만 대여하고 돈을 받은 사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자격정지 및 퇴출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구조적 비리=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재 관련 비리 척결을 천명하며 지난해 11월 감사원의 대규모 감사와 경찰청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숭례문과 별개로 광화문 복구공사 과정에서 감리 감독을 담당한 문화재청 공무원 6명이 시공업체로부터 월 50만∼100만 원씩 돈을 받은 사실과 일부 문화재 위원이 금품을 수수한 정황도 밝혀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숭례문#나선화#배기동#부실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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