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눈물, 우리가 닦아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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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어버이날… ‘빈자리’가 더 사무치는 참사 유족들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참사 때 23세 딸과 21세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김창윤 씨(59). 그는 매년 5월이면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어버이날(5월 8일)을 맞아 ‘부모님 사랑합니다’라며 해맑게 웃던 아들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 씨는 “5월만 되면 어쩔 수 없다. 어린이날 어버이날같이 이런저런 날이 다가오면 하늘로 보낸 두 아이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모임에서 지인들이 어버이날 받은 선물 이야기를 하며 자랑이라도 하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5월에는 유난히 결혼식도 많아 청첩장을 연이어 받으면 김 씨의 고통은 배가 된다. 그는 “두 녀석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결혼해서 손주도 안겨줬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며 슬퍼했다. 김 씨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5월이면 떠나보낸 가족 생각에 훨씬 힘이 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5월은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성년의날(19일)이 몰려 있는 ‘가정의 달’이다. 그러나 사건 사고 등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잔인한 달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축하와 감사를 나누고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지켜볼수록 쓰라린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일이나 생일 명절 성탄절 등을 맞았을 때 피해자의 가족들이 평소보다 더 우울해지고 슬퍼지는 심리적 증상을 의학적으로 ‘애니버서리 리액션’이라고 부른다.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5월이 돼도 실종자를 언제 모두 찾을지 모르는 상태다. 가족들이 애니버서리 리액션을 더 심각하게 겪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특히 스승과 제자를 동시에 잃은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은 고통 유발의 원인을 하나 더 안고 있는 셈이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피자를 보면 이걸 좋아했던 자식이 생각난다”거나 “바다를 보면 물에 아직 있을 아이가 생각난다”는 등 주변의 모든 것에서 자녀의 흔적을 찾고 있다. 경기 안산에서 이미 자녀의 장례를 치른 학부모들은 “단원고 근처에 가거나 교복만 봐도 잃어버린 자녀가 생각나 슬픔이 더욱 커진다”고 하소연한다. 가족의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이런 아픔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남궁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이고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므로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삶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활동도 효과적인 해법이다. 박은진 일산백병원 신경정신의학과 교수는 “상실감을 건전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추모 행사나 자원봉사 등에 참여하는 것도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과 비슷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 중에는 이런 방식으로 아픔을 극복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4년 전 천안함 폭침 때 아들 형제를 잃은 유족들은 올해 4월부터 공개적으로 단체 봉사활동에 나섰다. 아들(고 장철희 일병)을 잃은 아버지 장병일 씨는 “죽은 아들만 그리워하며 살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기에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애니버서리 리액션 (anniversary reaction·기념일 반응) ::

사건 사고 등으로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 고인의 기일이나 생일 때 평소보다 더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현상.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탄절 등 가족과 함께하는 기념일에도 같은 심리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건혁 gun@donga.com·권오혁·강은지 기자
#세월호#대구 지하철 참사#가정의 달#5월#애니버서리 리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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