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기도했다. 30일까지 총 2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경기 안산시 임시 합동분향소와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아와 조문했다. 시민들은 노란 포스트잇과 리본에 추모의 글을 적어 분향소 벽과 계단, 단원고 화단의 돌에 붙였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분향소도 추모의 물결로 가득했다. 미처 분향소를 찾지 못한 이들은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사이버분향소에 추모메시지를 남겼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을까.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합동분향소로 전국의 시민이 보낸 문자메시지, 단원고와 합동분향소 주변에 시민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사연, 사이버분향소에 누리꾼들이 남긴 추모 글 등 2000여 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메시지 10건 중 6건이 ‘미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어른’(17%) ‘행복’(15%) ‘하늘’(10%) 등의 단어도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많은 이들이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못난 어른이라서 미안해”라는 사과의 한마디였다.
○ ‘한국이란 배가 침몰했다’는 좌절감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반응은 다른 사고 때와 차이를 보인다. 1994년 성수대교,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10년 천안함 폭침 등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국민은 분노했고 사고 책임자를 꾸짖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당시 추모 카페에 ‘방화범을 처벌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하철의 안전대책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종류의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전체가 내 아들과 딸이, 친구가 목숨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고 있다. 모두가 이 사고를 막기 위해, 또 희생자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다. 사실상 국민 스스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시민들이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를 위해 적은 메시지에 사용된 단어들은 ‘행복’ ‘하늘’ ‘사랑’ ‘눈물’ ‘희생’ 등이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학생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앞으로 웃고 떠들고 즐거운 기억이 더 많을 아이들인데…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사이버분향소 메시지) 같은 댓글이 많았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선진국이라는 항구에 거의 다다랐다고 생각했지만 어이없는 사고로 침몰했고 이 때문에 한국 사회 전체가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우리가 꿈꿨던 한국 사회의 수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원시적인 사고가 일어났다는 자괴감이 크다”며 “‘어른’ ‘기성세대’라는 단어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아이들에게 ‘내가 사회를 이만큼 성장시켰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결국은 허상에 불과했다는 무력감이 덮친 셈”이라고 분석했다.
또 세월호 침몰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떠나던 고교생’으로, 이는 대부분의 국민이 갖고 있는 공통의 경험이어서 감정 이입이 쉽다는 점도 세월호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빠지는 이유로 꼽힌다.
○ 지나친 죄책감은 또 다른 사회 문제 잉태
대형 사고를 경험한 이들은 외부로 책임을 돌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사고의 경우 수백 명의 승객을 두고 먼저 피신한 선장, 부실한 안전관리를 해온 해운사, 사고 직후 신속한 구조활동과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 등 곳곳에서 총체적 부실, 부조리가 드러나 비난할 대상이 전방위에 걸쳐 있다. 단순한 해양 사고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가려져 있던 부정, 부패 등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심리전문가들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의 경우 외부가 아닌 자신 안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현상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참사가 발생하도록 방치한 우리 사회를 탓하다가, 나중에는 그 구성원인 ‘나(본인)’에게까지 잘못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적은 메시지 10건 중 2건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감정을 비쳤고 사고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이번 사고로 많은 어른들은 희생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는 세월호 피해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직접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흘러갈 위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슬픈 감정 속에서 계속 애도하다 보면 필요 이상의 죄책감을 갖게 돼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은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죄책감은 공격성과 분노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무차별적 공격을 가해 제3의 희생자를 양산할 수 있다”며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가진 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미안한 감정들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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