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당시 전남도 어업지도선 201호선과 구조보트를 타고 선두에서 수십여 명의 목숨을 구한 임종택 씨(47·전남도 수산자원과 어업지도과)는 최근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구조작업에 나섰던 4월 16일 이후 밤에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아침을 맞는다. 깨어 있을 때도 목이 메거나 가슴이 체한 듯 답답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날의 참상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주위에서는 “인명을 구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아픔은 점점 커져간다.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사고 당시 인명구조에 나섰던 사람들도 정신적 고통과 PTSS(Post Traumatic Stress Syndrome·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주로 잠을 못 자거나 우울한 기분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심하면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전에 접해본 적 없는 대형 참사를 가까이에서 겪은 이들의 뇌리에서는 그날의 일들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날 오전 임 씨는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선미(船尾) 난간에 위태롭게 매달려 “구해주세요!”라고 소리 지르던 승객, 공포에 덜덜 떨며 품에 안기던 생존자, 온 몸이 젖은 채 “안에 친구들이 있어요!”라고 비명 지르던 여학생. 숨이 넘어가던 한 승조원의 가슴을 눌러대며 사력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던 순간까지 모두 생애 처음 겪는 충격적인 일들이었다.
사고 뒤 임 씨는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고통을 털어놓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임 씨의 아들은 “우리 아버지가 사람들을 구한 영웅”이라며 자랑스러워했지만 임 씨는 아들을 볼 때마다 그 또래였던 단원고 학생들이 떠올랐다. 임 씨는 지난달 29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앞바다에 있는 201호선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20년 넘게 일터로 삼아온 바다가 무섭고 싫어졌다”고 털어놨다. 사고 발생 2주일째였지만 인터뷰 내내 임 씨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됐고 목소리는 울음에 찼다.
당시 함께 구조에 나섰던 201호선 항해사 박승기 씨(44)도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과 세 살배기 딸을 둔 박 씨는 “핏덩이 같은 아이들을 삼켜버린 바다가 밉고, 이런 사건이 또 일어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한 재난현장의 의인(義人)이지만 정부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임 씨나 박 씨 같은 이들은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아파도 드러내놓고 아플 수 없는 처지다. 생존자와 가족들에게 누가 될까봐 남몰래 병원을 찾아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 희생자뿐만 아니라 참상을 목격한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 있다”며 정부가 보다 광범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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