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속 친구는 웃고 있었다. 그 앞에 노란 리본이 묶인 국화꽃을 올려놓았다. 그 옆에, 또 그 옆에도 친구가 웃고 있었다.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아니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너무 가슴 아픈 이별이었기에. 옆에서 손을 잡고 조문을 하던 학부모가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할머니는 “얼마나 슬프고, 기가 막히면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릴꼬. 저 어린 것들이…” 하며 가슴을 쳤다.
30일 오후 2시 15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 단원고 2학년 70명이 도착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이들은 고인이 된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을 20여 분간 둘러보며 오열했다. 고려대안산병원에서 2주간 치료를 받았던 이들은 친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은 친구들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흰색 셔츠에 검은색 하의로 복장을 맞춰 입고 먼저 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조용히 분향소로 향했다. 이를 본 일반 조문객들은 양옆으로 비켜섰다. 그 사이로 아이들은 친구들의 영정 앞으로 걸어가 국화를 놓고 묵념했다.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들을 확인하느라 수많은 위패를 유심히 살폈다. 잠시 후 익숙한 얼굴이 있는 영정을 확인한 이들은 걸음을 멈춘 채 이내 눈물을 쏟았다.
조문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고려대안산병원에서 만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난 듯했다. 이들은 퇴원을 앞두고 2층 복도에서 모처럼 얘기꽃을 피웠다. 라면, 과자 등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여느 고교생 같은 모습이었다. 사고의 충격,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은 병원에서 많이 치유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날 분향소에선 달랐다. 병원에서 인터뷰를 하다 “내 이름 신문에 나와요?”라며 장난을 치던 김모 군(17)은 창백한 얼굴로 어머니의 부축을 받은 채 겨우 조문을 마쳤다.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고려대안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학생은 74명. 이 가운데 치료가 더 필요한 4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은 상태가 좋아져 30일 퇴원했다. 이날 조문을 마친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외부시설에 모여 집단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화랑유원지 제2주차장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에는 175명(학생 157명, 교원 4명, 일반 희생자 14명)의 영정이 안치돼 있다. 29일 분향소가 문을 연 뒤 30일 오후 11시 현재 조문객은 모두 4만3000명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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