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 그것만으로도 으스스한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 구렁이가 주인공이 혼자 자는 방에 들어왔습니다. 더군다나 몸을 칭칭 감고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꿈이어라, 꿈이어라…. 하지만 꿈이 아닙니다. 구렁이가 말을 겁니다. 이런, 구렁이와 말이 통하네요. 한술 더 떠서, 이 구렁이, 사람들 생각도 읽을 줄 압니다.
이 구렁이의 사연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자신의 알을 낳아 놓은 곳에 가 보니 알이 다 깨져 있더랍니다. 그 후로 자신 이외의 다른 구렁이를 보지 못해서 자신이 최후의 구렁이일지 모른다는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자신이 아는 구렁이 조상 이야기를 글로 남겨 달라 부탁합니다. 이른바 ‘구렁이 족보’입니다.
으스스한 이 구렁이, 커다란 몸통으로 스스슥 다닙니다. 주인공은 구렁이를 ‘스스 아줌마’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이렇게 이름 붙이고 보니 으스스한 기분이 줄어듭니다. 목적이 있긴 하지만 스스 아줌마는 주인공을 끔찍이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고민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뜀틀 넘기를 못하는 주인공의 고민을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가면 된다고 몸소 시범을 보입니다. 위의 그림은 주인공과 구렁이가 스르륵 담을 넘는 장면입니다. 믿어주는 만큼 신이 난 아이의 경쾌한 몸짓이 느껴집니다. 앞에 있는 구렁이의 표정이 따스해 보입니다. 둘이 부둥켜안고 춤이라도 출 태세입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단단한 자아를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조건입니다. 동화 속 캐릭터가 그런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구렁이 스스 아줌마가 바로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존재입니다. 캐릭터 구축이 약한 우리 동화에서, 스스 아줌마의 등장이 매우 반갑습니다. 더구나 작가가 이제 등단한 신인이라는 것이 더욱 기대를 하게 합니다.
어느 날, 스스 아줌마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여러 곳에서 스스 아줌마를 봅니다. 누군가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키고 있다는 것, 아이들에게 힘을 줍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