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대형사고땐 패가망신” 기업-공무원 뇌리 박히게 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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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
솜방망이 처벌 악순환 끊자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죗값을 23명이 나누자 죄만 남고 책임은 흐지부지됐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후 열린 재판에서 백화점 대표, 건설사 관계자, 뒷돈 받고 부실을 눈감아준 공무원 등 기소된 23명은 “나만 잘못한 건 아니지 않느냐”며 선처를 호소했다. 삼풍백화점의 이준 회장과 이한상 사장은 각각 징역 7년 6개월과 7년을 선고받았다. 안전사고와 관련해 사상 최고형이긴 했지만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가벼운 처벌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백화점 건립 및 편법 증축을 허가해준 이충우, 황철민 전 서초구청장은 부정처사후 수뢰 및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 외에 부실한 설계 감리 시공 안전검사 등에 참여했던 핵심 관련자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책임이 맞물리고 얽혀 책임 소재가 희석되면서 ‘면죄부’를 받은 셈이었다.

○ “모두의 잘못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지난 20여 년간 발생한 대형 인명피해 사고 책임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대부분 ‘n분의 1’로 나뉘다 결국 ‘솜방망이’ 처벌이 되는 패턴을 반복했다. 1999년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 사고 때도 수련원 대표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책임자들은 금고나 집행유예에 그쳤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때는 미숙한 대처로 피해를 키운 대구지하철공사 직원 8명 모두 1년 6개월∼5년의 금고형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충남 태안 해병대캠프 익사 사고와 관련해 캠프 주관업체 대표, 현장 교관 등 책임자 6명은 지난달 열린 항소심에서 “나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항변했다. 자신들의 안전조치 소홀로 캠프에 참가한 고등학생 5명이 숨졌지만 이들은 징역 6개월 및 금고 1∼2년형을 내린 1심 선고가 부당하다며 전원 항소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법처리 과정에서 책임 소재가 분산되고 그에 따라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이 계속 나오면 일선의 안전 관계자들은 ‘문제가 생겨도 그때만 잘 피해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에 주로 적용되는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 및 치상이다.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담보로 한 불법 행위를 고의가 아닌 실수로 보는 것이다. 게다가 치사와 치상을 하나의 범죄 혐의로 묶어 사고로 사람을 죽인 것과 다치게 한 것의 차이도 크게 두지 않고 있다. 이 혐의(치사와 치상)의 법정형량은 ‘5년 이하의 금고’로 같다. 여기에 피해 규모를 고려해 관련 법 위반혐의를 합해 가중해도 기본 형량의 1.5배(징역 가능), 즉 최대 7년 6개월 정도다. 삼풍백화점의 이준 회장이 징역 7년 6개월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규모 인명피해 사고에 적용 가능한 법조항도 따로 없다. 수십, 수백 명이 희생된 안전사고의 주범을 살인범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국민 정서와는 괴리가 크다. 여기에 관리감독 책임을 진 공무원들은 이마저도 적용하기 어렵다. 사고에 대한 직접적 연관성이 분명하지 않아 대부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처벌할 수 있을 뿐이다.

○ 하급 실무직 꼬리 자르기도 문제


정작 공동책임을 유발한 고위급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대구지하철 방화 때 기관사와 사령실 근무자들의 부실한 초동대처는 피해 규모를 키운 결정적 원인이었다. 법원도 평소 재난 발생 시 대응체계 마련에 미흡했던 대구지하철공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대구지하철공사 측은 안전 대비 부실에 따른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법적 처벌로는 실질적 책임자 대신 하위직 실무자들만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 처벌은 직접적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고위급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 “민형사 무한책임 지워야”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두고 선장과 선원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승객보호의무가 있는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형법상 유기치사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전망이다. 살인죄 적용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원들에 대해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의한 살인혐의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해진해운이나 감독당국 관계자는 공동정범으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사고를 낸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민간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공무원법 징계시효를 현행 3년에서 더 늘려 감독당국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말한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용 가능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이나 징계를 통해 사고 관계자들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애진 jaj@donga.com·신광영 기자
#대형사고#세월호#삼풍백화점#태안 해병대캠프#씨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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