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걷은 진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7일 03시 00분


[세월호 참사/눈물의 팽목항]
피해가족 돌보고 수색 돕고… 5명중 1명꼴 자원봉사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 사는 김연단 씨(54·여)는 요즘 고구마 굽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전날 구호물품 보관소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오븐에 구워 팽목항으로 가져간다.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고구마는 요긴한 간식거리다. 생업을 제쳐두고 팽목항으로 달려간 지 벌써 열여드레째.

김 씨는 “꼬박 12시간을 팽목항에서 보내고 돌아올 때면 몸은 파김치가 되지만 마음은 여전히 팽목항에 남아 있다”고 했다. 더 마음 써주지 못해서, 더 챙겨주지 못한 아쉬움이 큰 탓이다. 김 씨는 ‘빵을 맹그는 아짐’이란 민간 봉사단체 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 35명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격일제로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김 씨는 “부스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가족 한 분이 오셔서 ‘저희한테 좋은 것을 주면서 밥도 못 챙겨 드시느냐’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넬 때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진도는 지금 온통 노란 물결이다. 가로수와 전봇대, 지붕마다 걸려 있는 리본도, 실내체육관에서, 팽목항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주민들이 걸친 조끼도 노란색이다. 세월호 참사로 진도는 또 다른 피해자다. 하지만 주민들은 내 아픔인양 생업도 포기한 채 봉사에 나서고 있다.

진도낚시어선연합회는 사고 직후부터 줄곧 자비를 들여 수색작업을 돕고 있다. 매일 오전 8시경 5, 6척의 배에 나눠 타고 나가 해가 지기 직전에야 돌아온다. 세월호에서 빠져나온 유실물을 건지고 흘러나온 기름을 닦아 없애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작업을 위해 배를 띄우면 하루 평균 20만∼30만 원의 기름값이 들지만 자체적으로 해결해 왔다. 황남식 총무(52)는 “누가 시켜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모두가 같은 부모 마음 아니겠느냐”고 담담히 말했다.

진도군 수산지원과 공무원들은 요즘 섬으로 출근하고 있다. 서망항에 모여 진도수협 직원들과 함께 어업지도선을 타고 사고 해역에서 가까운 동거차도, 서거차도, 죽도로 간다. 기름이 해안가로 밀려들면서 검게 변한 갯돌을 헝겊으로 닦아내는 일이 이들의 하루 일과다. 김영복 진도군 수산지원과 주무관(44)은 “미역발이 기름으로 못 쓰게 됐지만 어민 누구 하나 푸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어민들이 세월호 참사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것 같다”고 전했다. 6일 현재 진도군 관내 410개 단체에서 7102명이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진도군 전체 군민은 3만2945명. 주민 5명 가운데 1명꼴로 ‘자원봉사’라는 ‘사랑나눔’으로 절망의 땅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진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세월호 참사#팽목항#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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