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 낀 남녀 웃으며 사진촬영… 눈살 찌푸리게 한 일부 방문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7일 03시 00분


[세월호 참사/눈물의 팽목항]

오죽했으면… 대책본부 ‘당부 벽보’ 가족대책본부 천막에 ‘경건한 분위기’를 당부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진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오죽했으면… 대책본부 ‘당부 벽보’ 가족대책본부 천막에 ‘경건한 분위기’를 당부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진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5일 오후 5시 20분경 전남 진도 팽목항. 주황색 아웃도어 재킷을 맞춰 입은 한 쌍의 연인이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들어섰다. 그들은 팽목항 한쪽에 마련된 자원봉사단체들의 부스와 자원봉사자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팽목항 곳곳을 둘러봤다. 가족대책본부 앞에 놓아둔 간식과 추모 메시지를 훑어보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스마트폰 카메라로 주변 정경을 찍기 시작했다. 바로 옆을 지나치는 실종자 가족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둘만의 데이트처럼 보이는 행동은 한동안 계속됐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등 연휴가 겹치면서 이 기간에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는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 대부분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현장을 둘러본 뒤 추모와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일부 방문객은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팽목항의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념 촬영을 하거나 크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화사한 나들이 복장이나 짧은 치마, 하이힐 등을 착용한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추모의 뜻을 전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는 한 남성 아이돌 그룹도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한 채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방문객의 이런 행태에 대해 한 자원봉사자는 “실종자 가족들이 여전히 큰 슬픔에 잠겨 있는데 마치 관광지에 온 것처럼 사진 찍고 떠드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과 현장 관계자의 지적이 이어지자 5일 오후 “실종자 가족분들을 위해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대형 안내문이 팽목항 입구 2곳과 가족대책본부 천막 옆에 부착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도 6일 브리핑을 통해 “연휴 기간에 일부 방문객이 기념사진을 찍거나 심하게 웃는 등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사례가 있었다”며 “실종자 가족이나 사고 수습 관계자 이외의 분들은 팽목항 방문을 가급적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방문할 경우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진도=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세월호 참사#팽목항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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