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설립 때부터 사번을 부여받았으며 회장으로서 경영을 실질적으로 맡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오래전 일선경영에서 손을 뗀 세모그룹 전 회장이 아니라 엄연한 현직 최고경영자로서 청해진해운 회장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부회장단’을 통해 계열사 ‘그림자 경영’을 이끌었던 증거까지 다수 확보돼 유 전 회장에게 세월호 침몰에 대해 직접적인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 ‘부회장단’ 통한 막후경영 드러나
유 전 회장 일가의 경영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유 전 회장이 차남 혁기 씨(42)와 박승일 아이원아이홀딩스 감사(55), 김동환 다판다 감사(48) 등 소위 ‘부회장단’을 통해 청해진해운 등 계열사 경영에 관여한 정황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혁기 씨와 박 감사 등 ‘부회장단’이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유 전 회장의 계열사 경영을 가능케 한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전방위적인 수사로 확보한 진술과 증거를 바탕으로 유 전 회장에서 부회장단, 계열사 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유 전 회장의 그림자 경영 구조를 확인했다.
8일 소환 통보에 결국 응하지 않은 혁기 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해 강제구인 절차에 착수했고, 이날 박 감사를 체포한 뒤 바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감사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유 전 회장 측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72)를 언론 앞에 내세워 사과하게 하고 “사진을 수만 장 찍느라 경영에 관여할 시간이 없었다. 계열사 주식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주장을 무력화시키기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계열사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설립하고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자금을 빼돌린 것도 모두 유 전 회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증거도 다수 확보했다. 아이원아이홀딩스 설립 전엔 유 전 회장을 중심으로 소위 ‘높낮이 모임’이라고 불리는 계열사 사장단 회의도 수차례 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4월 15일 작성된 인원현황표에도 ‘회장’
세월호 사고원인을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비상연락망과 청해진해운 측이 합수부에 임의 제출한 ‘인원현황표’에는 유 전 회장의 직함이 ‘회장’으로 적혀 있었다. 2011년 7월 기준으로 작성된 비상연락망 가장 위쪽에 유 전 회장이 ‘회장’ 직함으로 표시됐고, 사고 전날인 4월 15일 기준으로 청해진해운이 직접 작성한 인원현황표에도 유 전 회장이 ‘회장’으로 가장 위에 올라 있다.
게다가 1999년 청해진해운 설립 당시 사번 ‘A99001’을 부여받아 최근까지도 월 1000여만 원을 급여로 받은 점도 경영에 관여한 결정적 증거로 보고 있다. ‘A99001’은 1999년 첫 번째로 입사한 인물이란 뜻이다.
합수부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청해진해운 김 대표는 사번이 A09006이고, 이미 구속된 김모 상무의 사번은 A08006이다. 사번의 ‘A’는 사무직을, ‘B’는 선박직을 의미한다고 검찰은 밝혔다. 인원현황표상 청해진해운의 임원이 유 전 회장과 김 대표, 김 상무 등 3명에 불과하고 이미 퇴사한 직원들은 인원현황표에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청해진해운에서 받은 급여는 고문료 명목일 뿐 경영에 관여한 적은 없다”는 유 전 회장 측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같은 방식으로 청해진해운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서도 실질적인 회장으로 군림하며 경영에 관여한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건과 진술 등 관련 증거를 상당수 확보했다. 이와 함께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 경영 과정에서 세월호 부실 운영에 관여한 사실을 확인해 김 대표와 더불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까지 적용할 방침이다.
○ 배임, 횡령에 대출금 유용까지
검찰은 앞서 유 전 회장에 대해 계열사로부터 허위로 받아 챙긴 400억 원대의 컨설팅 비용과 사진작품 매입 자금의 해외 유출도 핵심 혐의로 보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부회장단을 통해 계열사의 경영을 사실상 지배해온 점으로 미뤄볼 때 범죄 혐의 입증에 큰 걸림돌은 없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유 전 회장 일가와 계열사들이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자금이 원래 대출 용도대로 쓰이지 않고 다른 계열사로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금융감독원은 유 전 회장 계열사들에 돈을 빌려준 산업은행 경남은행 등 주요 은행들을 대상으로 특별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유 전 회장 측 계열사들이 대출금을 다른 계열사로 보내는 방식으로 자금을 유용한 사실을 확인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설자금 대출의 경우 당초 용도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규정 위반”이라며 “세월호 관련 회사들이 시설자금 대출을 어떻게 썼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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