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주장을 인용해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했다는 발언을 기사화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매체는 그가 사석에서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희생돼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를 생각하면 많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접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8일 밤 서울 KBS 본관에 항의 방문했으나 KBS 측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면담에 응하지 않자 청와대 앞으로 이동해 밤샘 농성을 벌였다. 이에 대해 김 보도국장은 9일 보직 사임의사를 밝히면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일방적으로 왜곡 선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진실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논란에서 청와대가 보여준 행태는 실망스럽다. 청와대 측이 유족들을 면담한 뒤 김 보도국장의 사의 표명이 나왔다. 이어 KBS 길환영 사장이 농성 장소에 찾아와 사과를 했다. 유족들이 청와대에 요구한 KBS 사장 사과와 보도국장 사퇴, 박근혜 대통령 면담 등 3가지 중 2가지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가 됐다. 박준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원내대표를 찾아가 “KBS에 최대한 노력을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공영방송 문제에 청와대가 개입하고 외압을 가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박 대통령은 “방송을 장악할 의도는 없으며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현 정부가 이전에도 KBS에 압력을 행사해온 것은 아닌지 의문을 자아낸다. 더구나 김 보도국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왔다”고 주장하며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길 사장이 KBS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보도의 방향을 다룰 수는 있으나 정부 요구를 앞장서 대변했다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다.
새정치연합은 청와대에서 KBS 인사에 개입했다고 비난했지만 박 원내대표도 박준우 수석과 통화하며 김 보도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고 한다. 어제는 새정치연합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이 KBS 사장 퇴진을 주장했다. KBS 내부에선 노조가 수뇌부에 대한 흠집 내기 의도를 드러냈다. KBS가 방만 경영에 집안다툼까지 벌여 ‘콩가루 집안’ 민낯을 보이면서 국가기간방송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