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북한 막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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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1989년 6월 김일성이 양강도 삼지연군 포태종합농장을 시찰했을 때 일이다. 김일성이 “올해 농사가 참 잘됐다”고 칭찬하자 관리위원장이 무심결에 이렇게 말했다.

“수령님, 다 하늘의 덕입니다.”

김일성은 물론이고 수행 간부들의 얼굴이 곧바로 굳어졌다. 김일성이 떠나자마자 관리위원장은 해임됐다. 고산지대에선 하늘이 농사를 좌우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나 김일성 앞에선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주체농법의 덕입니다”라고 대답했어야 했다. 김일성도 어딜 가나 들었던 모범답안을 기대했을 터인데, 평생을 백두산 아래 두메산골에서 산 이 관리위원장은 너무 고지식했다.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

1999년 스페인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의 우승 소감은 북한에서 지금도 ‘아부의 교본’처럼 전해지고 있다. 덕분에 정성옥은 스포츠 선수 최초의 공화국 영웅이 됐고 평양의 호화주택과 벤츠 S500 등 최고의 물질적 보상도 챙겼다. 이처럼 북한은 통치자의 귀에 드는 말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운명도 바뀐다.

북한 당국이 남한을 향해 쏟아내는 막말 퍼레이드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남쪽을 향해선 어떤 욕을 해도 처벌받을 일이 없다. 오히려 통치자의 귀에 솔깃한 대남 비방 욕설을 써서 “아주 시원하게 잘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김정은에게 만족을 드린 사람’으로 평가돼 평생이 보장된다. 그러니 대남 발표를 담당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남쪽을 향해 어떤 신종 욕설을 개발해 퍼부을까 머리를 싸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권력자를 칭송하는 것도 아부요, 권력자가 싫어하는 대상에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 것도 아부라는 점에서 아부와 욕설은 뿌리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아첨을 싫어하는 권력자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북한이 남한을 향해 쏟아내는 막말을 보면 ‘저 정도는 해줘야 김정은에게 먹히는구나’ 싶어 김정은의 심경이 어떤지, 그가 말하고 싶은 것 혹은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막말이 저 정도면 김정은 주변에서 아부하는 말은 얼마나 더 쎌까.

아이러니한 일은 북한 사회에서 살았던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아부를 잘 못해 직장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점이다. 탈북자들은 회사 상사나 동료들에게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 대인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탈북자들을 향해 남북한의 민주주의를 비교하면서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마구 욕해도 멀쩡하니 이런 사회로 자유를 찾아 너무 잘 왔다”고 소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 역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대통령을 호칭도 없이 이름만 부르며 마음대로 욕하는 것이 놀라웠다. 이름만 부르면 차라리 다행이다. 인터넷에선 ‘×박이’ ‘×그네’라고 대통령을 향해 심한 욕설로 도배를 해도 멀쩡한 곳이 남한이다.

그런데 남한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체득한 게 있다. 남쪽에서 하는 표현의 자유는 먼 곳의 권력을 향해서 무제한으로 허용되며 내 밥줄이 달린 곳에선 아주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북에선 김정일 부자를 향해 “당신 독재자야”라고 말하면 당장 목이 잘리지만, 남에선 대통령 욕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사장 앞에서 욕을 하면 밥줄이 잘린다.

북한은 의무고용이 헌법에 명시돼 있어 해고가 없다. 월급과 배급은 법적으론 국가에서 보장해준다. 내 밥줄을 보장하는 것은 상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상사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상사에게 상욕을 해대며 멱살 잡고 싸워도 다음 날 해고 통지서가 날아오진 않는다.

정치권력을 향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자유와 일터에서 상사를 비판하는 자유…. 둘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문제라 엄밀히 말해서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모두 제약됐을 때 불편함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밥줄을 국가가 틀어쥔 북한은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을 완전히 차단했지만 사적 영역에 대한 비판에서는 관대한 편이다. 여기에 북한 사람들은 집에선 몰라도 공개석상에서 김정은을 욕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어려서부터 김 부자(父子)를 신처럼 여기도록 세뇌됐기 때문이다.

남과 북을 체험한 나에게 둘 중 하나만 택하라 한다면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솔직히 일터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를 더 갖고 싶다. 대통령에게보다는 할 말이 훨씬 더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북한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북한의 억압적 체제가 생생한 사례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임이 분명하다.

북한의 막말이 해마다 점점 더 심해지듯이 한국의 일부 누리꾼 속에선 권력을 향한 막말 수위가 도를 넘는다. 아마 세계적 수준이 아닐까 싶다. 사적 영역에서 발언의 민주화는 바닥인데, 공권력을 향한 저주는 세계 상위권이니,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국가에 대고 푸는 건 아닐까. 작금의 모습을 북한에 보여주면서 한국은 민주주의적 비판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자랑하자니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북한에서 상상하던 민주주의 사회는 분명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통치자#막말#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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