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이례적으로 국무위원 전원의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임박한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발표에 앞서 내각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회의 시작과 함께 “국가 재난안전 제도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며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발표하도록 했다. 박 대통령은 통상 국무회의에서 ‘깨알 지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모두발언을 통해 국정 방향을 제시한 뒤 안건을 처리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안건 처리도 미룬 채 의견 수렴부터 시작했다.
이미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참석하지 않아 진행은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았다. 현 부총리 왼쪽에 앉은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을 시작으로 류길재 통일부 장관까지, 앉는 순서에 따라 22명이 모두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회의는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50분까지 2시간 50분간 진행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세월호 사고 관련 사후 대책과 향후 안전사고 예방 및 대처 방안, 안전문화 정착 방안 등이 거론됐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선 5급 공채시험(옛 행정고시) 폐지나 안행부의 실질적 해체 같은 근본적인 처방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다. 주로 재난 발생 시 초동 대처 방안과 안전의식 고취 같은 행정적 대안에 대한 발언이 많았다고 한다. 관료 출신 장관이 많은 데다 타 부처 장관 앞에서 관료사회를 강도 높게 개혁하자고 건의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일부 참석자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과 관련해 퇴직 공무원의 유관단체 취업을 제한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과 직무와 관련 없이 금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하는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의 국회 처리가 필요하다는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부처 산하 유관 협회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담화문에 담을 구체적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였다기보다 국민 의견 수렴 과정 중 하나로 내각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쳤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며 “담화문 내용은 대통령이 직접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그동안 많은 의견을 수렴한 만큼 연구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조만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늦어도 다음 주 초반에는 담화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담화 발표 이후 야당 지도부에 공식적으로 협조를 구할지도 관심사다. 박 대통령이 약속한 국가안전처 신설이나 각종 안전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면 법 개정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만큼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다. 또 잡음 없이 개각을 마치려면 원만한 대야(對野)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6·4지방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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