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 천주교 박해 다룬 伊 희곡 영문초판 찾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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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美서 출간 ‘조선의 순교자들’… 서지 수집가 윤형원씨 해외서 입수

1887년 미국에서 출간한 희곡 ‘조선의 순교자들’ 초판본.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시점을 감안하면, 이탈리아어로 먼저 낸 뒤 거의 동시에 영문판을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아트뱅크 제공
1887년 미국에서 출간한 희곡 ‘조선의 순교자들’ 초판본.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시점을 감안하면, 이탈리아어로 먼저 낸 뒤 거의 동시에 영문판을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아트뱅크 제공
19세기 조선에서 벌어진 천주교 박해를 다룬 이탈리아 희곡 ‘조선의 순교자들(The Martyrs of Corea)’의 영문 초판이 발견됐다. 조선 후기 한반도를 소재로 유럽에서 창작한 종교적 문학작품의 존재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한국 관련 해외 서지자료를 수집하는 ‘아트뱅크’의 윤형원 대표(68)는 11일 “미국 필라델피아의 D J 갤러거 출판사가 1887년 출간한 희곡 ‘조선의 순교자들’ 1쇄본을 최근 해외 고서적 마켓에서 입수했다”고 밝혔다. 총 53쪽으로 이뤄진 이 희곡은 안토니오 이솔레리라는 작가가 썼는데,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간한 뒤 작가가 직접 영어로 번역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종교와 조국(Religion and Fatherland)’이란 부제가 붙은 이 희곡은 머리말에 “1866년 3월 8일의 순교에 대해 썼다”는 대목이 있다. 이날은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조선교구(조선대목구) 제4대 교구장이었던 장 베르뇌(한국명 장경일·張敬一·사진) 주교가 현 서울 용산구 이촌로에 있던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한 날이다.

희곡의 순교자는 1866년 조선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었던 병인박해 때 처형된 사람들이다. 베르뇌 주교를 포함해 프랑스 사제 9명과 조선의 천주교도 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발생 이후 사건의 실태를 문학의 형식을 빌려 서구사회에 전하려는 목적이었다.

병인박해는 한국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때 탈출한 프랑스 신부 리델이 중국 톈진(天津)에 있던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를 알렸고, 프랑스 함대가 이를 빌미로 강화도를 침공한 병인양요가 벌어졌다. 윤 대표는 “작가가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기보단 당시 상황을 충실하게 전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희곡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베르뇌 주교는 프랑스 르망 교구 출신으로 1837년 사제품을 받은 인물. 베트남에서 포교를 시작해 중국 랴오둥(遼東) 지방에서 10여 년간 활동했다. 1856년 한국에 입국한 그는 충북 제천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배론신학교’를 설립했다. 흥선 대원군이 1866년 천주교 탄압 교령을 포고한 뒤 출국을 명했으나, 이를 거부하다 체포돼 군문효수(軍門梟首·목을 베어 매다는 처벌)형에 처해졌다.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諡福)됐고, 1984년 방한한 교황 바오로 2세가 성인(聖人)으로 추대했다.

희곡을 쓴 작가 이솔레리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책에 “이탈리아에 있는 산타마리아막달레나 교회의 도움을 얻어 집필했다”는 구절이 있어 종교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런 희곡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반응이다. 교구 소속 ‘한국교회사연구소’는 “구한말 조선의 기독교 역사를 다룬 유럽 희곡은 존재 여부도 알려진 적이 없다”며 “병인박해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만큼 향후 면밀한 연구가 꼭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선의순교자들#병인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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