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한달/잊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살아나올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그는 남았다
주검으로 돌아온 ‘義人’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며 침몰하는 세월호에 끝까지 남아 승객 구조 작업을 하다 실종된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46)가 15일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양 씨는 선장 등 고위급 승무원 가운데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남았던 유일한 인물이다. 양 씨의 시신은 16일 오전 헬기로 인천으로 운구돼 길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될 예정이다.
양 씨는 지난달 16일 오전 10시 3분경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자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통장에 돈이 있으니 아이들 등록금으로 써.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해 끊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가장(家長)이었다. 그는 두 아들에게 “형이라고 불러”라고 말할 정도로 친구처럼 지냈다.
양 씨와 친했던 고홍근 오하마나호 사무장(59)은 “생존 승무원들에 따르면 양 사무장이 배 3층 안내소에서 학생들을 갑판으로 올려놓은 다음 조리실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를 듣고 조리실 직원들을 구하러 가다가 이들과 함께 탈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 씨는 백화점 총무팀 직원, 대형마트 점장 등으로 일하다 2010년 청해진해운에 입사했다. 오하마나호에서 사무부 부사무장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봄 사무장으로 승진해 세월호로 자리를 옮겼다. 사무장은 승객에 대한 서비스를 책임지는 자리다. 양 씨는 승객 응대 외에도 화장실 변기 및 조명 수리, 배 페인트 칠, 배식 등 세월호 내 궂은일까지 도맡아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던 그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주로 승선하는 여객선에서 일하는 것을 즐겼다. 양 씨의 형인 양석환 씨는 “인천에서 제주까지 14시간이 걸리는데 동생이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랑 정이 들어 너무 좋다’고 늘 말했다”며 “침몰 당일에도 하룻밤 사이에 친해진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홍근 사무장은 “대홍이는 새벽까지 로비에서 잠든 손님에게 일일이 모포를 덮어주느라 하루 2, 3시간밖에 못 자는가 하면 술 취한 손님이 뺨을 때려도 웃을 정도로 친절했다”며 “술에 취해 자살하려는 승객을 달래기 위해 승객의 하소연을 들으며 밤을 새우는 등 책임감이 투철해 초고속으로 승진했다”고 전했다. 이런 친절함 덕에 과거 오하마나호나 세월호를 탔던 승객들은 양 씨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친절하고 서글서글한 그 직원’으로 기억하곤 했다.
그는 가족에게도 강한 책임감을 보였다. 3남 2녀 중 막내였지만 줄곧 청각 장애가 있는 홀어머니를 모셨다. 형제 중 양 씨를 특히 아꼈던 어머니는 충격 받을 것을 걱정한 형제들이 숨긴 탓에 아직 양 씨가 숨진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수색작업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 1명이 머리 어깨 등에 마비성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고 밝혔다. 민간 잠수사 염모 씨(57)는 14일 수색을 마친 뒤 통증을 호소해 감압체임버에서 감압처치를 받았으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염 씨는 고압산소치료센터가 있는 경남 사천시 삼천포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민간 잠수사가 잠수병 때문에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3번째다.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이동식 조립주택을 20일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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