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추기경의 첫 방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2일 03시 00분


독일 통일 전 동독에 속했던 라이프치히는 상업과 예술로 유명한 유서 깊은 도시다. 중세 때부터 상품 박람회가 열렸고 바흐, 멘델스존, 바그너, 괴테가 여기서 예술의 꽃을 피웠다. 바흐는 이곳의 성 토마스 교회와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말년의 대작들을 남겼다. 성 니콜라이 교회는 독일 통일운동의 출발이 된 월요 평화 기도회가 열린 곳이다. 1982년 시작된 기도회는 보통 세계 평화를 빌었으나 1989년 9월부터는 기도 후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다른 곳으로 확산됐다.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북한에서 라이프치히와 가장 비슷한 곳을 꼽으라면 개성이 아닐까 싶다. 고려의 수도로서 당대에 이미 무역의 중심지로 세계로 문이 열려 있었고 ‘개성상인’이란 말을 낳은 곳이다. 서경덕 황진이 한석봉 등 수많은 문인과 예인이 활동했던 점도 비슷하다. 남북 대치가 심화된 상황에서도 현재 5만 명이 넘는 북측 근로자들이 남측 입주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며 남북의 상생과 통일을 꿈꾸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이 어제 육로로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공단 관계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추기경의 첫 방북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 서울대교구 측은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는 무관하고, 북측 인사와의 접촉도 없었다고 밝혔으나 북이 염 추기경에게 북녘 땅을 열어준 속내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바람도 있었을 것 같다. 염 추기경도 “남북이 화합하는 개성공단에서 아픔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소탈한 행보로 존경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때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를 집전하면 국내외 이목이 쏠릴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6·25전쟁이 발발한 6월을 매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달’로 정해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미사를 드린다. 염 추기경이 평양도 방문해 북의 유일한 성당인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개성공단#염수정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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