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에 제재 조치를 취한 일본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일본은 과거사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쿠릴 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협상을 벌여 온 러시아와도 사이가 틀어지는 양상이다. 동아시아에서 더 고립되자 일본은 최근 한국과 북한에 우호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일본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일본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일본은 쿠릴 열도 협상도 중단하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공들이는 쿠릴 열도 협상 중단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 관계자 23명의 일본 입국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제재 조치를 내렸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 이후 푸틴 대통령과 5차례나 정상회담을 했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서 발을 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중국과 부쩍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합병한 뒤 미국 등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고 중국은 점차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에 맞서기 위해 서로 손을 잡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20∼26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가 있는 동중국해에서 사상 최대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10년 넘게 끌어온 중-러 천연가스 협상도 최근 타결했다. 이에 따라 중-러가 미국 견제를 위해 ‘신(新)밀월’을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언론은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점차 외톨이가 되고 있는 아베 정권은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북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은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한과 두 번째 외무성 국장 회담을 연다. 올해 초 북한의 ‘대화 재개’ 요청에 일본이 적극 화답하면서 3월 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일 정부 간 협의가 열린 데 이어 두 달 만에 또 회담을 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스톡홀름 협상에서 납북 피해자의 안부 재조사를 문서로 확약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산케이신문이 24일 보도했다. 북한 측은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에 있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 건물과 토지의 경매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과거사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에도 비교적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베 내각은 15가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사례집에 “해외에서 일본인의 생명이 위협받았을 때 ‘영역국의 동의’에 기반해 일본인을 구출한다”는 내용을 넣었다고 아사히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앞서 아베 총리의 자문기구인 안보법제간담회는 15일 보고서에서 ‘재외 일본인 보호와 구출을 위한 자위권 발동과 관련해 예외적으로 영역국 동의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한국 동의 없이 한반도에 진입할 가능성에 한국이 반발하자 이를 의식해 ‘영역국의 동의’ 표현을 사례집에 넣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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