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달려가서 아이를 안아 우물가로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맹자는 이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하고 ‘인지단야(仁之端也)’, 즉 인의 본질로 규정했다.
아기의 위험을 보고 ‘살리는 게 좋은 일’이라는 관념조차 없이 본능적으로 아기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 본래 갖고 있는 인이라는 것이다.
꼭 영웅 의인이 아니더라도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면 힘닿는 대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긴다는 측은지심은 맹자 성선설의 근거 중 하나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은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 자기들 살겠다고 수백 명의 승객을 사지에 방치하고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비난을 많이 받은 해경의 경우는 어땠을까. 그들은 과연 세월호에서 구조할 당시 ‘측은지심’이 없었던 것일까. 정말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구조를 요청하는데, 갑판에 있던 다른 승객이 학생들 구조를 도와달라고 하는데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한 것일까.
그러나 해경이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고 여기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그들이 어찌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상황 파악이 안 됐거나 그런 훈련과 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허둥지둥했거나 아니면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없었는지는 몰라도 측은지심마저 없이 구조를 외면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사고 직후부터 일선에서 세월호 피해자 가족의 지원을 담당해온 한 고위 간부는 21일 해경 해체가 발표된 뒤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인천 해경본부로 올라왔다. 그는 한때 분노한 일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멱살까지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올라온 뒤 한 실종자 아버지는 그에게 ‘한 달 넘게 가족한테 못 가면서 사명감 하나로 아이들을 진심으로 찾아주며 같이 웃고 울어준 팽목항의 해경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희생자 아버지도 “저희 유가족의 슬픔을 같이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 과장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은혜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때 공적(公敵) 1호로 꼽히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도 수염도 깎지 않고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사고 이후 한 번도 현장을 떠나지 않자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분노,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의 분노는 책임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가혹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분노의 크기가 클수록 비판의 크기도 커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분노가 가라앉으면 무차별적으로 비판을 받았던 대상들의 위치와 역할 등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진심과 정성은 이제 인정해 줄만 하지 않을까.
물론 해경이나 해수부의 무사안일을 질타하고 비리를 도려내야 한다. 이들이 져야 할 법적 책임은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고, 사고 처리에서 무능했다는 지적과 도덕적 책임 역시 감수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이들을 ‘측은지심’을 기대할 수 없는 범죄집단 내지는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여선 안 된다. 분노를 증오로 바꿔서는 안 된다. 분노를 증오로 바꾸라고 부추기는 일부 세력들도 행동을 그만둬야 한다.
조직 해체의 된서리를 맞은 해경이 본연의 임무를 잘할 수 있도록 다독여주고 손잡아 일으켜줄 때다. 16명의 실종자 수습은 물론이고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 해안경비 등 많은 일들이 해경에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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