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해경 하늘바다파출소의 전순열 경위(43)는 작년 1월 동아일보사와 채널A가 시상한 제2회 영예로운 제복상의 대상(大賞)을 받았다. 해상특수기동대의 단정(고속보트)장으로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 26척을 단속한 공로였다. 중국 선원들이 흉기를 휘두르고 가스통에 불을 붙여 던지며 격렬히 저항하기 일쑤여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써야 했다.
전 경위는 시상식 때 “해양경찰관이 된 것을 아내와 두 딸이 무척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상금 3000만 원은 순직 동료들의 유족을 위한 위로금과 장학금,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모두 내놓았다.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이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힌 뒤 전 경위 생각이 났다. 해경이 국민의 공적(公敵)처럼 돼 버린 요즘 그는 어떻게 지낼까.
24일 어렵사리 통화가 됐을 때 전 경위는 해경이 단 한 명의 선내 승객도 구조하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했다.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해경 가족들도 ‘처음에 너무 대처를 못했다’고 말하니까요. 하지만 누가 가도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는 많이 위축된 듯했다. “오늘도 순찰 나갔다가 지나가던 차가 창문을 내리고 ‘어이∼ 해경!’ 하며 손가락질하는 걸 봤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해체될 해경이 뭐 하러 나와 설치느냐’고 항의하기도 해요. 직원들의 자부심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가족들이 ‘우리 남편이 해경’이라고 남에게 말하기 어렵잖습니까.”
그러면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동료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그 사람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바다에 들어갑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얼마 전 동료와 통화했는데 말로 표현은 못하고 그냥 울먹이더군요.” 해경 해체에 대한 허탈감도 감추지 않았다. “해경을 천직(天職)으로 여겼는데… 해경이 없어지면… 계속 일은 하겠지만 제복을 입는 프라이드는 못 느낄 것 같아요….”
304명의 사망·실종자를 구하지 못해 가장 죄책감을 느끼는 건 여론의 돌팔매를 맞는 해경일 것이다. 조직마저 해체될 판이니 자괴감도 무척 클 것 같다. 나는 죄 없는 사람인양 해경에게만 돌을 던질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적폐(積弊)가 빚은 참사 아닌가. 청와대와 정부, 국회, 언론 등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그 누구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죄 없는 죽음에 참회, 속죄해야 할 주체들이 ‘내 탓이오’ 하지 않고 해경을 희생양 삼아 책임을 회피해선 곤란하다.
해경의 무능과 잘못을 엄중히 따지되 그 다음엔 국가가 해상안전을 확실하게 책임져야 한다. 해경을 없애고 구조 구난과 경비 분야는 신설 국가안전처로, 수사 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겠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 과연 최상의 해법인지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공론화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내린 결정인 만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수렴해 국민이 납득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난 3년간 영예로운 제복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군 경찰 소방관 등 제복을 입은 공무원(MIU)들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남을 구하기 위해 내 목숨을 거는 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다는 긍지와 사명감 없이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상의 역대 수상자 중엔 해양경찰관이 두 명 더 있다. 1회 우수상을 받은 박성용 경위(서해지방청)는 단정을 타고 파도를 헤치며 단속업무를 하다 허리 디스크가 파열돼 최근 수술을 받았다. 3회 우수상을 받은 목포해경 최유란 경사는 세월호 사고로 더 분주해졌다. 이들도 상금 2000만 원을 전액 기부했다. 이런 해경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