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기업들 社名에 이렇게 깊은 뜻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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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씩 쌓아 산이 되는 ‘두산’… 코리아나일론 줄여 ‘코오롱’

삼성이라는 이름은 이병철 창업주가 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세우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왼쪽). 현대는 정주영 창업주가 세운 정비소인 ‘현대자동차공업사’에서 처음 쓰였다. 동아일보DB
삼성이라는 이름은 이병철 창업주가 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세우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왼쪽). 현대는 정주영 창업주가 세운 정비소인 ‘현대자동차공업사’에서 처음 쓰였다. 동아일보DB
3월 28일 LG패션은 주주총회를 열어 사명(社名)을 LF로 변경했다. LF는 LG패션(LG Fashion)의 약자처럼 보이지만 ‘Life in Future(라이프 인 퓨처·미래의 삶)’의 약자다. 구본걸 LF 회장은 “사명 변경을 계기로 단순히 옷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아닌 고객에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생활문화 기업으로 재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기업의 사명에는 기업이 꿈꾸는 가치와 철학 등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기업의 가치는 사명, 즉 ‘브랜드’의 가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때로는 LF처럼 사명을 바꿔 기업의 지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업 사명의 유래와 변화,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기업 태동기엔 한자어 위주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길게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초창기 사명에는 ‘한자어’를 주로 썼다. 삼성(三星)그룹의 ‘삼성’은 1938년 이병철 창업주가 대구에 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세우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 창업주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에 따르면 삼성의 ‘삼(三)’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을 나타내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성(星·별)’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뜻한다.

현대(現代)는 1946년 정주영 창업주가 세운 정비소인 ‘현대자동차공업사’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현대라는 사명은 당시 자동차가 문명의 가장 큰 이기(利器)였기 때문에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창립 118년을 맞은 국내 최고(最古) 기업인 두산(斗山)은 기업의 역사만큼이나 사명도 오래됐다. 박승직 창업주가 자신의 이름을 건 ‘박승직 상점’을 1951년 ‘두산상회’로 바꾸면서 탄생했다. ‘한 말(斗) 한 말 쌓아서 큰 산(山)을 이루리라’는 뜻이다.

삼성과 같은 별 성(星)자가 들어가는 효성(曉星)그룹은 조홍제 회장이 삼성 이병철 회장과 14년에 걸친 동업을 청산하고 1957년 만든 효성물산에서부터 시작됐다. 효성은 샛별을 뜻하는 말로 ‘민족의 앞날을 밝게 비출 동방의 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진(韓進)그룹은 1945년 조중훈 창업주가 트럭 한 대로 창업한 ‘한진상사’에서 유래했는데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한진그룹은 현재도 사명처럼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한진 등 물류·수송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인천 창업주의 아호인 금호(錦湖)를 따 지은 이름이다. 이후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에 ‘금호’가 붙지 않아 사람들이 금호그룹과 아시아나항공을 별개의 기업으로 인식하게 되자 2004년 ‘금호아시아나’로 그룹 명칭을 바꿨다.

글로벌화 흐름 속 영문 약자 유행

1990년대 들어 기업의 ‘글로벌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명을 영문 약자로 짓는 바람이 분다.

시초는 1995년 구본무 회장 취임과 함께 사명을 바꾼 LG그룹. LG그룹의 최초 사명은 ‘락희’였다. 구인회 창업주가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 설립에 앞서 형제들과 사명을 의논하던 중 둘째 동생인 구정회 씨가 낸 아이디어다. 행운을 의미하는 영어 ‘러키(Lucky)’에서 유래했지만 즐겁고 기쁘다는 뜻의 ‘락희(樂喜)’를 뜻하기도 했다. 이후 주식회사 ‘럭키’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1984년 그룹의 주력사인 금성(金星)전자의 ‘금성’과 합쳐 럭키금성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뒤 다시 LG로 바꿨다. ‘럭키금성(Lucky Goldstar)’의 첫 자를 땄다는 해석이 많았지만 LG는 이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LG에서 계열 분리된 GS그룹과 LS그룹, LIG그룹 등도 모두 영문 약자 사명을 쓰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럭키금성에서 따온 알파벳 ‘L’과 ‘G’ ‘S(Star)’를 조합한 약자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저마다 사명의 뜻은 다르다. GS는 사명의 뜻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생활에 편리함, 편안함, 즐거움을 주는 생활가치 향상을 목표로 한 ‘굿 서비스(Good Service)’ 등의 의미를 담아 활용하고 있다. 한때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란 노래가 유행할 때는 “GS가 강남스타일(Gangnam Style)의 약자”라는 농담이 돌기도 했다. GS그룹 본사 사옥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다. LS그룹은 종합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뜻에서 ‘리딩 솔루션(Leading Solution)’이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다. 그룹의 주력 업종이 보험업인 LIG는 ‘Life is Great’(삶은 위대하다), ‘Leading Insurance Group’(으뜸 보험사)이라는 의미를 사명에 담고 있다.

KT&G는 2002년 민영화가 되면서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이름을 바꿨다. KT&G는 한국담배인삼공사(Korea Tabacco & Ginseng)의 영문 약자였다. 하지만 사명을 변경하면서 KT&G는 자사의 사명을 ‘Korea Tomorrow & Global(한국 미래 & 글로벌)’의 약자라고 밝혔다. 기존의 사명을 재해석해 기업의 지향하는 바를 담은 셈이다. KT&G의 계열사인 KGC인삼공사는 민영화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공사’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KT&G 관계자는 “법원에서 사기업도 공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7년 선경(鮮京)그룹도 영문 약자인 SK로 사명을 변경했다. 선경은 1930년대 직물 수출 기업인 ‘선만주단’과 일본의 견직 기업인 ‘경도직물’의 합작사인 ‘선경직물’에서 유래했다. 당시 이곳에서 근무하던 SK 최종건 창업주는 1953년 이 공장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소설 주인공, 제품명으로 사명

코오롱은 그룹 전신인 ‘한국나이론’이 만든 한국 최초의 나일론 원사(原絲) 제품 이름이었다. 코리아 나일론을 줄여 코오롱(KOLON)이라고 제품명을 지었는데 제품의 반응이 좋자 1977년 사명으로 대체했다. ‘쿠쿠’ 역시 제품이 사명이 된 대표적 사례다. 성광전자는 전기밥솥을 ‘쿠쿠’라는 브랜드로 내놨는데 이 제품이 성공하면서 사명을 아예 ‘쿠쿠’로 바꿨다.

롯데그룹 사명의 유래는 낭만적인 면이 있다. 창업주인 신격호 그룹총괄회장이 일본 유학 시절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감동을 받아 여주인공 ‘샤를로테’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신세계는 1963년 동화백화점에서 이름을 바꿨는데 고객 공모를 통해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사명이 된 케이스다.

한편 한화그룹은 1993년부터 현재의 사명을 쓰고 있다. 그 전까지는 한국화약그룹이라는 사명을 썼는데 사명을 영어 또는 중국어로 하면 테러집단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랜드가 곧 돈… 형제간 법정 다툼도

사명, 즉 브랜드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해외 브랜드 가치 평가 기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구글이 1588억 달러(약 162조 원)로 가장 비싸다.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이 259억 달러(약 26조 원)로 29위를 기록했다.

실제 지주회사들은 각 계열사에서 거둬들이는 브랜드 사용료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LG는 2690억 원을, ㈜SK는 2296억 원을 브랜드 사용료로 받았다. 농협금융지주 등 금융지주회사들도 상당한 금액의 브랜드 사용료를 받고 있다.

그룹 경영권이 창업주에서 2대, 3대로 내려가면서 계열 분리를 한 형제간에 사명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일도 많다. 피를 나눈 사이지만 이름은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LG그룹은 세계화 열풍이 불던 1995년 ‘럭키금성’그룹에서 사명을 바꿨다. 왼쪽 사진은 LG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의 1957년 ‘럭키치약’ 신문 광고이며 오른쪽은 1959년 ‘금성사’의 라디오 신문 광고. 동아일보DB
LG그룹은 세계화 열풍이 불던 1995년 ‘럭키금성’그룹에서 사명을 바꿨다. 왼쪽 사진은 LG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의 1957년 ‘럭키치약’ 신문 광고이며 오른쪽은 1959년 ‘금성사’의 라디오 신문 광고. 동아일보DB
대성그룹은 2001년 김수근 창업주가 별세한 뒤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사명을 두고 장남인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삼남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간 법정 다툼을 하고 있다. 대성산업이 2010년 대성지주로 사명을 변경해 상장을 추진하자 대성그룹이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한 것. 창업주가 대성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라고 했지만 두 형제는 서로 ‘대성그룹’ 회장이라는 상징성을 포기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차남 김영민 회장은 계열 분리 뒤 서울도시가스그룹으로 사명을 바꿨다.

현대는 계열 분리 과정이 ‘왕자의 난’으로 불릴 정도로 순탄치 않았지만 사명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으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이 2008년 신흥증권을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을 ‘현대IB증권’으로 결정하자 현대그룹이 “계열사인 현대증권과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반발하며 소송 일보 직전까지 간 일이 있었다. 결국 현대차는 HMC투자증권으로 사명을 바꿔야 했다.

박진우 pjw@donga.com·강홍구 기자  

▼ 해외 기업들의 이름은? ▼

IBM은 ‘국제 사무 기계’의 약자… 도요타는 창업자 이름서 유래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1903년에 만든 회사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1903년에 만든 회사다.
해외에서도 기업의 이름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만드는 경우는 어디서나 가장 일반적이다. 세계 1위의 자동차 업체인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 창업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공장이 있는 도시의 이름이 도요타 시로 바뀌기도 했다. 미국의 포드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만든 회사고, 맥도널드는 창업자인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비롯했다.

오래된 기업 중에는 알고 보면 김빠지는 이름을 가진 곳도 적지 않다. 1911년 세워진 미국의 IBM은 ‘국제 사무 기계(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의 약자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업종을 완전히 바꿨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이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의 GE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Edison General Electric)’에서 유래했다.

최근에는 점차 의미를 담아 기업 이름을 만드는 추세다. 스티브 잡스는 사과 농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애플’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그는 생전에 “재미있으면서도 생기가 느껴지고 위협적인 느낌이 없다”고 작명의 배경을 밝혔다. 구글은 수학 용어인 구골(googol·10의 100제곱)의 철자를 응용해 만들었다. 무수히 넓은 인터넷 세계를 검색한다는 뜻이다.

일본의 소니는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회사 이름을 바꾼 경우다. 원래 ‘도쿄통신공업’이었으나 세계 어디서나 쉽게 표기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상표를 궁리한 끝에 소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소누스(Sonus)와 소년이라는 의미의 서니(Sonny)를 조합해 만들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두산#코오롱#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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