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민선자치 시대를 연 뒤 성년(成年)을 맞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지, 우리 동네를 대표할 선량(選良)으로는 어떤 자질을 갖춘 사람이 뽑히기를 바라는지, 이번 선거를 통해 세월호 참사로 만신창이가 된 대한민국의 국운 상승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장보기’라고 답한 중환자실 근무 간호사는 “남편과 아들을 위한 좋은 먹거리를 고르는 마음으로 후보자를 뽑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출전 선수들처럼 후보자들도 4년간 노력한 결실을 얻는 행사이기 때문에 ‘월드컵’이라는 대답도 나왔다.
7년 전 베트남에서 와 귀화한 여성에게는 ‘설렘’이고, 북한을 떠나 우리 땅에 정착한 탈북자는 지방선거의 의미를 ‘자유의지’라고 풀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기계처럼 하던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뜻을 대리할 후보자를 자유롭게 뽑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란다.
고2 남학생을 자녀로 둔 한 주부는 ‘기대’라고 했다. 그는 “많은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우리 지역을 4년간 책임질 일꾼을 뽑는 데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고 했다.
그렇다! 7장의 투표용지는 내가 만드는 7개의 임명장이 될 수 있다. 슬픔에 빠진 한국 사회에 ‘다시 시작하자’는 새 출발을 알리는 활력의 원천(源泉)이 될 수도 있다.
동아일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를 설명해 줄 15명의 ‘대표’ 유권자를 선정해 심층인터뷰를 했다. 3선 연임을 마치고 물러나는 지자체장, 8번의 군수선거가 치러진 전남 화순군 주민, 중환자실 근무 12년 차 간호사, 처음으로 참정권을 행사하게 된 대학생 등….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씨는 이렇게 말했다. “슬픔에 빠진 유권자는 희망의 한 표를, 정치에 실망했다면 새로운 미래를 향한 격려의 한 표를 행사하자. 행동하는 유권자만이 대한민국을 아름답게 디자인할 수 있다.”
투표소로 향하는 당신의 발걸음, 그곳에서 행해진 소중한 한 표. 대한민국의 대변화, 6월 4일 시작된다.
하태원 triplets@donga.com·홍정수 기자 ▼ “내 아이의 먹거리 고르는 꼼꼼함으로 일꾼 찾을 것” ▼
중환자실 경력 12년차 간호사 변영경 씨(35)에게 선거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매일 이어지는 3교대 근무, 목숨이 위태로운 응급환자가 수시로 찾아오는 중환자실 업무 탓에 투표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변 씨는 “이번만큼은 반드시…”라며 강한 투표 의지를 밝혔다. “내 남편과 다섯 살 아들이 먹는 반찬거리를 고르는 주부의 마음으로 좋은 일꾼을 뽑아보겠다”는 각오. 변 씨는 이번 선거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 문제를 해소해줄 일꾼을 뽑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불러온 변화다. 내가 꼭 투표장으로 가야 하는 이유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야 하는 워킹맘인 변 씨는 ‘우리 아이가 무탈하게 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떠날 새가 없다. “누가 당선되건 폐쇄회로(CC)TV 설치 대수나 보육교사 수를 늘려 엄마들의 염려를 덜어주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다고 한다. 변 씨는 “선거 전에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슈퍼맨’ 행세를 하던 후보자들이 당선만 되면 모른 척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선출한 주민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했다.
고교 2학년 아들을 둔 장연숙 씨(43)에게도 꼭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아들과 동갑인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을 지켜본 장 씨의 눈에는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내놓은 대책들이 아무 소용도 없어 보여 실망했다.
“다들 되는 대로 온갖 대책을 뱉어 놨지만 다음 날 다 번복하잖아요. 보여주기 식으로 일단 내놓은 뒤에 고치고 또 고치고…. 너무 불안해요. 한 가지 정책이라도 심사숙고해서 정했으면 좋겠어요.”
장 씨는 끈기와 신중함을 갖춘 사람을 눈여겨본다. 당장 눈앞의 성과를 내진 못하더라도 인내심 있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것. “가까이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물리적으로가 아니라(웃음). 언제든지 주민들의 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분이었으면 해요.”
대학 2학년인 신호인 씨(20·서울시립대 공간정보공학과)는 ‘첫 경험’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자치단체장 후보들의 공약을 ‘열공’ 중이다.
“후보들 공약을 다룬 기사를 읽어보고 있어요. 정당을 보고 뽑는 게 아니라 공약을 비교하고 후보 개인에 대한 공부를 한 뒤 결정하려고요. 처음 참여하는 선거인 만큼 시간, 노력, 정성을 들여 한 표를 행사하고 싶어요.”
그는 최근 선거운동 중인 한 자치단체장 후보를 만난 경험을 전했다. 명함 뒤에 적힌 세월호와 관련한 안전 공약들을 보고 질문을 몇 개 던졌는데 답변에 매우 실망했다고 한다. 신 씨는 “안전센터 건립, 관련 법 강화, 관계자 처벌 같은 문구가 있었는데 답변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구체적이지 않았어요. 뻔하지 않은 공약, 진실성이 보이는 다른 후보를 찾으려고요.”
기성세대는 요즘 대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 큰일이라고 하지만 신 씨는 “모르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 운영위원장이 되기 때문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서울시장 후보에게 특히 관심이 많아요. 학교에 와보시면 알아요. 친구들이 선거에 대해 얼마나 열띤 토론을 하는지….” 주소지가 전남 여수인 그는 4일 고향에 간다. 투표하기 위해서다. 탈북자, 다문화가족에게도 소중한 한 표
북한에서 대여섯 번 투표를 했다는 전미나(가명·35) 씨에게도 이번 선거는 설렘이다. 북한에서 열일곱 살에 첫 선거권을 얻은 뒤 14년간 많은 투표를 해왔지만 제대로 된 선택을 해본 적이 없다.
“북한 주민들 누구도 누가 당선되든 관심 없었죠.”
전 씨에 따르면 북한의 투표 과정은 이렇다. 투표장에 들어선 뒤 이름을 적어 투표에 참가했다는 증거를 남긴다. 투표증을 받아들고 천으로 둘러싸인 투표함으로 가 투표증을 넣는다. 투표함은 사방이 막혀 있지 않고 출입구가 열려 있어 바로 앞에서 투표함에 넣는 모습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 이상하다. 알려진 북한의 선거제도에 따르면 후보를 반대할 경우 투표증의 이름 위에 선을 긋게 돼 있다고 했다.
“실제로는 투표증에 뭐가 쓰여 있는지 열어볼 생각도 하지 못해요. 반대는 꿈도 꾸지 못하죠. 괜히 투표장에서 이상한 행동을 했다가는 바로 잡혀 갑니다.”
“무조건 찬성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꿈나라에 와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합니다.”
그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산다. 경기도지사부터 고양시장까지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는 “남편을 고른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를 선택할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남편은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려운 이를 도와줄 사람, 거짓 없는 사람, 북한에서 왔다고 차별하지 않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사람이 반드시 있겠죠? 다들 자신이 잘할 거다 하지만 그중 진실한 사람을 가려낼 눈이 내게 있을지…. 정말 눈 크게 떠야겠습니다.”
7년 전 베트남에서 온 응우옌티니 씨(28)는 2008년 한국의 투표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오전 7시 남편을 따라 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투표소 앞에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7년 전 한국으로 이민 오기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신기한 풍경이었다.
“베트남은 한국처럼 대통령이나 시장을 뽑는 선거가 없다. 그나마 한국으로 치면 ‘동’쯤 되는 행정구역의 대표를 투표로 뽑긴 하는데 선거운동도 하지 않는다. 동네 벽 몇 곳에 포스터만 붙고 사람들은 후보에 대한 소문을 듣고 투표하는 정도였다.”
응우옌티니 씨는 3년 전 한국으로 귀화해 선거권을 얻었다. 6·4지방선거는 그에게 생애 첫 선거나 마찬가지다. 요즘 후보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악수하거나 재래시장에서 어묵을 먹으면서 선거운동 하는 모습은 그에게 신기하게 보였다.
응우옌티니 씨는 이번에 어떤 후보를 선택할까. 그는 “비밀이지만 꼭 투표하겠다. 내가 사는 지역의 정치인을 내 손으로 뽑는다니 뿌듯하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 관한 한 평화롭고 순조롭지 못했던 전남 화순에 사는 배병선 씨(72)는 지방선거 때만 되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배 씨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게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돋보기를 들고 후보자들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불행한 화순의 지방자치사를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은 유권자에게서 나온다고도 했다.
보통사람 속으로 파고든 생활정치가 찾아야
선거나 지방자치를 연구한 학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박명호 동국대 교수(50·정치학)는 학생들이 대통령 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선거에 덜 주목하고 있지만 생활의 정치를 직접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길 바라고 있다. 박 교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공공성을 먼저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레 국가 단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며 “생활의 정치를 경험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치에 뜻이 있는 학생들은 기초단위 지방선거부터 출마하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의 승패는 결국 ‘인물’에서 갈릴 것으로 봤다. 박 교수는 “정책평가를 위해 후보들의 공약을 들여다보면 여야 간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라며 “유권자는 ‘누가’ 더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50)는 “누가 세금의 의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지 선발하는 자리”라며 “국민의 세금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을 뽑는 자리”라고 했다.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세금의 엄중함을 아는 사람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돼야 하며 유권자 역시 투표 전 이를 엄밀히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공공시설을 앞다퉈 건설했던 지자체들이 속으로는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것이 국가경제의 숨은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따져야 한다.
성공한 기업을 벤치마킹해야 할 지자체
박종환 록앤올 대표(42)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라고 본다. 고객 의견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점에서 그렇고, 빠른 피드백이 없으면 불만이 생기는 점도 닮았다.
“눈에 띄기 위한 거창한 행사나 대외활동보다는 주민들의 작은 민원에도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일 때 유권자들은 마음을 열기 마련이잖아요. 지자체장들이 소속 정당의 이익보다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치 및 공무원에 대한 불신도 점차 사라질 겁니다.”
박 대표는 자발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많을 때 기업이 성장하듯 지자체도 주인의식을 가진 공무원이 늘어날 때 주민 서비스 수준도 향상될 수 있다고 했다.
대학에서 소비자행동과 마케팅을 강의하는 여준상 동국대 교수(44·경영학)는 “우리 국민은 복잡하고 비대해진 유통구조를 바로잡는 ‘개혁자’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며 “6·4지방선거가 유통구조 선진화 및 소비자 권익 확대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태원 triplets@donga.com·홍정수 기자
▼ “7개의 투표용지는 내 손으로 만드는 7개의 임명장” ▼
6·4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30, 31일은 사전투표가 진행되어 벌써 투표를 한 사람도 많다. 좀 복잡하기도 하고,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한 표 한 표의 선택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미래를 내 힘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u@donga.com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60)은 “지금까지 지방자치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넘기는 단체자치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정작 지역주민들은 그 열매를 향유하지 못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선거로 뽑힌 단체장의 전횡과 밥그릇만 챙기는 향공(鄕公·지방공무원)이 지방자치라는 꽃이 만개하는 것을 막는 주범이라고 했다.
12년간 일선에서 지방행정을 진두지휘한 나소열 전 충남 서천군수(55·3선)는 “단순하게 열심히 하겠다는 후보보다는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해본 흔적이 있는 후보를 뽑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아름다움을 디자인하자
디자이너 이상봉 씨(60)는 최근 주말 예능프로그램에서 차세대 리더를 뽑는 선거가 실시된 것을 보면서 디자인과 선거가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씨는 “본래 디자인 산업이 우리나라에서 태동한 것이 아닌 것처럼 선거제도 역시 외국의 것을 우리나라에 이식하여 한국형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수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정당과 후보자도 유권자로부터 표를 얻어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양자는 치열한 경쟁을 요소로 한다”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패션쇼에 견준다면 이 씨가 연출하고 싶은 주제는 ‘아름다움’이다. 유권자가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참된 후보자를 선택하려는 정성이 진(眞)이요, 정당과 후보자가 상호 비방하지 않고 정견과 정책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것이 선(善)이고, 낙선자는 당선자를 축하하고 당선자는 낙선자를 위로함으로써 모두가 하나 되는 미덕이 미(美)라고 했다.
이 씨는 “선거에 있어서 이런 진선미가 어우러진다면 이번 지방선거 컬렉션을 통해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팝페라테너 임형주 씨(28)는 투표권이 생긴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 새 앨범 홍보를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는 그는 다음 달 2일 귀국할 예정이다. 당초 5일에 귀국하는 일정이었지만 6·4지방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귀국 일정을 앞당긴 것.
요즘 그는 문화적으로 좋은 정책을 펼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공연 때문에 자주 해외를 나가는 그는 유럽과 미국 등 해외의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를 눈여겨본다고 말했다. 음악회 연극 무용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어릴 때부터 접하다 보면 문화적 감성이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가 많이 열리길 기원했다. 지방자치단체도 문화에 좀더 관심을 가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문화도시로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서울에 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되길 희망하기도 했다.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무산돼 안타까워요. 서울에 별도의 오페라하우스가 생기면 시민들은 물론이고 관광객에게도 많을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텐데요.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 선생님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결국은 기본과 원칙이 이긴다
1995년 11월 삼성화재의 창단 사령탑을 맡아 1997년 겨울리그부터 올해까지 18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그중 두 번만 빼고 16차례 정상에 올라 ‘배구의 신(神)’으로 불리는 신치용 감독(59). 수십 년 동안 매일 아침 주요 일간신문을 1면부터 꼼꼼히 읽어온 습관 덕분에 사회적인 이슈에도 훤하다.
그의 지도철학은 단순하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엄격하다. “선수들에게 책잡힐 행동을 하면 감독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신 감독은 지역일꾼이 꼭 갖춰야 할 덕목으로 진실함을 꼽았다.
“진실하면 성실하다. 시류에 영합하고 자신의 앞날만 생각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진실하기에 청렴할 수밖에 없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의 문제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주민을 위해 발휘할 수 없다. 정말 진실한 사람이라면 일도 잘할 것이다.”
신 감독은 “스포츠는 정정당당하고 룰을 잘 지켜야 스포츠로서 의미가 있다. 부끄럽게 승리하느니 지는 게 낫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당장은 웃겠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지 못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철호 irontiger@donga.com·손효림
화순=정승호 기자 ▼ “슈퍼맨을 원하는 건 아니랍니다” ▼
내 고장 ‘일꾼’에게 바라는 건? 성실-청렴-따뜻함… 저마다의 이유로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할 유권자들은 6·4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될 내 고장 일꾼들에게 ‘슈퍼맨’의 괴력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통 사람 이상의 청렴성, 약속한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책임감, 사리사욕을 이겨낼 수 있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 등이 필요하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돋보기 들고 후보자들 들여다봐야”
나소열 전 서천군수는 “주민 앞에 떳떳하려면 나 스스로 깨끗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주민들이 이런 덕목을 갖춘 인물을 후임 군수로 뽑아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보였다.
1995년 이후 군수선거만 8번을 치른 전남 화순군에 사는 배병선 씨도 지체 없이 ‘청렴’을 꼽은 뒤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게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돋보기를 들고 후보자들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첫 투표에 나설 서울시립대 2학년 신호인 씨는 “당선 뒤 공약을 끝까지 지키는 ‘뚝심’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덕목”이라고 단언했다. 간호사 변영경 씨도 주요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고 했다.
고2 자녀를 둔 장연숙 씨는 △끈기 △인내 △신중함을 덕목으로 꼽았다. 4년간 우리 지역을 책임질 사람을 뽑는 일인 만큼 유권자인 본인도 책임감을 갖고 투표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학자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동아일보 매니페스토 평가단 간사인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는 “주민의 요구를 귀 기울여 듣고,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문적인 식견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의 요구에 반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코디네이터’가 돼 줄 수 있는 사람이 본질적으로 지방자치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조세연구원 공공기관정책연구센터를 이끌었던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경제학)는 “지역 기반의 기득권층 저항을 이기고 규제와 예산이라는 두 가지 정책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리더”를 주문했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문화적, 정신적 소양을 높이 샀다. 여 교수는 “그동안은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성공에 대해서만 강조해 왔다”며 “이제는 앞만 보지 말고, 옆과 뒤도 돌아보며 모두가 함께 잘살 수 있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따뜻한 사람 찾습니다
중소기업인 ‘록앤올’의 박종환 대표는 털털함과 완벽함이라는 상반된 듯한 덕목을 동시에 요구했다. “집 근처 선술집에서 함께 술 한잔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서민적이고 털털하지만 업무를 처리할 때는 누구보다 완벽하고 치밀한 최고경영자(CEO) 같은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선의의 경쟁을 펼친 뒤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미덕을 갖춘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신치용 감독은 “주민들의 행복한 일상을 위해 스포츠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며 스포츠맨다운 바람을 털어놨다.
탈북자 전미나(가명) 씨는 “남북 간 자유왕래가 가능한 통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을, 다문화 가정의 응우옌티니 씨는 “따뜻함”을 최고의 덕목이라고 말했다. 시민들과 대화하며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함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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