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본인의 철학과 소신, 능력보다는 개인적인 부분에 너무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서 가족의 반대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인선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발표에 앞서 이렇게 운을 뗐다. 인사 지체로 인한 국정 공백이 심각하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동시에 발표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압축적 설명이었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지난달 28일 직후부터 많은 후보를 놓고 검증을 벌였으나 새 인물을 찾기까지 2주가 걸렸다. 개혁성과 도덕성을 모두 겸비한 인사를 찾기 힘들었던 데다 적임자다 싶으면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고사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 현역 정치인→야권 인사→언론인
안 전 후보자 사퇴 이후 여권에서는 현역 정치인의 발탁을 희망했다. 국가 대개조 작업을 하려면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초대 내각이 ‘받아쓰기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인사가 내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논리가 우세했다.
이 때문에 인선 초반만 해도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운 정치인을 발탁해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를 키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김 의원이 6·4지방선거 유세에서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나타내면서 초반 인선 구상이 꼬였다. 차기 대선주자를 발탁할 경우 자칫 대통령과 총리 간 불협화음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압도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역 정치인은 후보군에서 배제됐다.
이어 김종빈 전 검찰총장,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과 김영란 전 대법관 등 일부 법조인이 물망에 올랐으나 “또 법조인이냐”는 비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지명한 총리 후보자 3명은 모두 법조인이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등 법조인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법조인을 발탁하는 데 대한 부담이 컸던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중용된 야권 인사들도 후보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야권의 검증 공세를 피하고 국민 대통합 메시지를 담으려면 야권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는 논리가 작용한 것이다. 일각에선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후보군에 올랐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소문이 퍼지자 여권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보수 정권의 정체성 자체를 훼손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 마지막까지 요동쳤던 총리 인선
언론인이 후보군에 포함된 것은 이달 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관료 개혁이 화두인 상황에서 관료 출신을 발탁할 순 없고, 학자는 현장 대응력이 떨어져 배제됐다”며 “늘 사회 문제를 고민해온 언론인 가운데 리더십과 추진력이 있는 인물을 찾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다양한 직군과 성향의 인사 십수 명 가운데 청와대의 인사 검증을 통과한 인사는 드물었다고 한다. ‘국민검사’로 주목받은 안 전 후보자마저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한 상황에서 ‘무결점 인사’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새누리당에서도 청와대에 철저한 검증을 거듭 주문했다. 그 결과 문 후보자는 결격사유가 거의 발견되지 않은 데다 언론계 내부 평가도 좋아 최종 낙점됐다.
하지만 인선 발표 전날인 9일에도 여러 변수를 놓고 막판 점검을 하느라 상황이 유동적이었다고 한다. 문 후보자는 10일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기자들을 만나 “어젯밤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전날까지도 여러 인사에게 의사를 타진했다는 말도 나온다. 문 후보자 외에 몇몇 인사를 두고 막판 고심을 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초기에 박 대통령이 염두에 둔 인사들이 모두 검증에서 탈락하면서 박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없는 문 후보자에게 기회가 왔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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