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의 테두리는 왜 오톨도톨할까? 원래 금화는 액면 금액만큼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녔다. 금화를 조금 깎아 유통시키고 나머지 부분을 몰래 챙겨도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금화의 테두리를 살짝 긁어내 함량이 부족한 돈을 유통시켰다. 이에 영국 정부는 1661년부터 금화나 은화에 오톨도톨한 테두리를 만들었다. 종전의 함량미달 주화는 시장에서 퇴출됐다. 우량의 양화(良貨)가 악화(惡貨)를 몰아내면서 금화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고, 영국 경제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상품 거래에 작용하는 이런 ‘가격’ 시스템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사이에도 ‘신뢰’라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 교수는 일정 수준의 위험이 있는 경제행위에는 신뢰라는 작용이 들어가야 실제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권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신뢰가 형성되었기에 우리는 교환과 보유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신뢰는 보장되는가? 1958년 모턴 도이치 뉴욕대 교수가 그의 논문에서 밝혔듯, 신뢰를 깸으로써 받는 불이익이 이익보다 훨씬 크게 만들면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130%에 해당하는 담보를 받을 수 있으면 돈을 빌려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신뢰 위반자가 얻는 불이익은 발각될 확률과 벌칙에 해당하는 페널티를 높게 함으로써 크게 만들 수 있다. 금화의 굴곡 테두리가 그 역할을 했듯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발각될 확률과 페널티를 높여야 한다.
순찰이나 감찰 강화는 물론이고 각종 파파라치 제도나 내부 제보의 활성화 등은 발각될 확률을 높이는 방편이 된다. 벌칙을 크게 하는 것은 징계수위와 법정 형량을 높이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김영란법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가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연구를 했다. 한국인은 1999∼2004년 조사에서 100명 중 31명이 ‘예’라고 대답했다. 이 수치는 2005∼2009년 28명, 2010∼2014년 26명으로 계속 하락했다. 이는 28명의 러시아와 비슷하고, 독일의 45명, 스웨덴의 60명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수치다. 우리 사회의 신뢰 부족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제3의 자본이라고 불리는 신뢰의 부족은 시장경제에 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신뢰는 국가안전처의 신설과 같은 정부의 ‘보이는 손’이 만들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주화의 오톨도톨한 테두리처럼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시스템 안에서 개개의 국민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신뢰 프로세스의 생산자요 소비자가 될 때 신뢰는 저절로 형성된다. 그렇게 될 때 개혁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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