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학교 교사에게 정년을 보장하는 테뉴어(tenure) 교사 제도가 가난한 학생들이 좋은 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판결이 미국에서 나왔다. 한번 교사가 되면 능력에 관계없이 정년까지 재직하는 미국 공교육의 근간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상급법원의 롤프 트루 판사는 10일(현지 시간) 공립학교 학생 9명이 주 정부 등을 상대로 낸 위헌심판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트루 판사는 판결문에서 “증거는 강력하다. 양심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능력 없는 교사가 학생들의 미래 수입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는 학생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임용은 더 까다롭게, 해고는 더 쉽게 교원 인사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트루 판사는 캘리포니아 주 현역 교사 27만5000명 중 최대 8250명(3%)이 극히 무능하다고 지적했다.
트루 판사는 16쪽의 판결문을 통해 세 가지 주 법률 조항이 학생들의 평등권 등 주 헌법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헌법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대목은 △교사가 임용 후 2년이 지나면 종신직을 받도록 한 조항 △교사 수를 줄여야 할 때 능력에 관계없이 가장 나중에 들어온 신참 교사가 먼저 해고되도록 한 조항(seniority) △교사 해고를 위해 길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 조항이다.
‘학생들이 중요하다’라는 단체를 만들어 소송을 지원한 실리콘밸리의 광학통신 제조회사 창립자 데이비드 웰치 씨는 “신분보장 조항 때문에 실력 없는 교사들이 가난하고 유색인종이 많은 지역의 학교에 집중돼 있다. 이 지역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는 백인 학생들과는 달리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며 2012년 학생들을 대리해 소송을 냈다.
주 교육부는 “판결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사 40만 명이 소속된 캘리포니아 교사협회(CTA)와 교사연맹(CFT) 등 교원 단체들은 “정년을 보장하지 않으면 교직 지원자들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며 불복 자세를 보였다. 최종 판단은 주 대법원에서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은 공교육 교사직의 유연성을 둘러싼 국가적 논쟁의 대리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원고 편에는 워싱턴 교육감 재직 당시 실력 없는 교사를 가차 없이 해고했던 한국계 미셸 리가 있다. 2009년 워싱턴 공립학교 교사 테뉴어를 없앴던 그는 현재 시민단체를 만들어 전국으로 확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판결은 미국 교원노조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테뉴어는 교사가 인종차별과 임신, 정치 등 가르치는 능력 이외의 요인으로 해고되지 않도록 1909년 뉴저지 주가 처음 도입했다. 하지만 신분 보장이 오히려 교사를 나태하게 만들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폐지하거나 심사를 강화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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