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석호]유엔 북한조사위원회 보고서 효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미국 워싱턴 연방 하원 빌딩에서 18일(현지 시간) 열린 북한 인권 청문회는 미국 의원들을 위한 ‘과외수업’을 방불케 했다. 비슷한 청문회가 이미 여러 차례 열렸지만 이날 공부모임은 학생과 교재, 선생님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매우 특별했다.

우선 청문회 주체는 북한 문제를 주로 담당해 온 외교위원회 산하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가 아닌 ‘아프리카·국제보건·국제인권·국제기구 소위원회’였다. 크리스토퍼 스미스 위원장(공화·뉴저지) 등 5명의 소위 위원들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교재로 삼아 기초적인 북한 관련 상식부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소위원회는 한국의 다양한 전문가 3인을 증인으로 초청했다. 한국 정부를 대표한 이정훈 북한인권 대사(연세대 교수)와 민간 연구자인 신창훈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 탈북자 신동혁 씨가 그들이다. 그들은 치밀한 사전 준비를 통해 의원들이 짧은 시간 동안 북한 문제의 핵심을 꿰뚫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 대사는 특히 “북한 체제의 반체제 인사에 대한 인권 유린은 COI 보고서가 지적한 반(反)인권 범죄를 넘어서 인종청소 또는 계획적 대량 학살(genocide)로 볼 수도 있다”는 영국의 유명 국제법 전문가들의 COI 보고서 검토 의견을 문서와 함께 전달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신 위원은 북한 핵개발 시설에서 벌어지는 핵 전문가들의 인권 유린 문제를 제기했다. 주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비확산 관점에서 다뤄지던 북핵 문제에 ‘핵 기술자 인권’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추가해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박의 고리를 하나 더 만든 것이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청문회는 3시간 동안 진지하게 진행됐고 이는 C-SPAN방송으로 미 전역에 생중계됐다. 2월 공개된 COI 보고서가 진보진영이 ‘탈북자와 일부 보수적 연구자들의 편향적 주장’으로 치부했던 북한 인권 현실을 유엔의 이름으로 확인하고 정당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입증하는 사례였다.

COI 보고서는 북한 인권 문제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3월 24일 오후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연방 상원 건물에서 열었던 ‘북한의 인권 침해―COI 보고서 다음은 어디인가’ 세미나에는 청중 20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지난해 마이클 커비 COI 위원장이 워싱턴에서 주재한 북한 인권 청문회 방청석이 텅 비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방청객들은 “COI 보고서 발표 이후 북한 인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커졌다”고 증언했다. 조지워싱턴대 국제관계대학원 석사 과정의 조너선 가텐버그 씨(29)는 “지도교수가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해 공부하러 왔다. COI 보고서가 북한 문제를 논의할 때 가장 권위 있는 자료로 인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COI 보고서 공개 이후 미국 내 북한인권 운동단체들과 교민들은 이를 ‘대북 제재 강화’의 구체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이날 “보고서가 인권 침해 주체로 지목한 개인과 조직, 기관에 대해 미국과 국제사회가 ‘타깃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입법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대사는 18일 청문회 직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COI 보고서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주시하고 북한과 후원국 중국 러시아 등을 압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OI 리포트 효과’를 잘 활용해 북한 민주화의 밑불을 지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