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장인회 씨(39)는 1999년 결혼 뒤 직장을 관두고 12년 동안 가사일에만 전념했다. 하루에 8시간씩 3교대로 일하면서 결혼생활을 충실히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임신 후에는 밤샘 근무가 쉽지 않았다.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심했다.
장 씨는 2010년이 돼서야 재취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따가운 시선 앞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먼저 밤에 일하지 않는 병원을 찾기 어려웠다. 조건이 맞는 병원 4곳 정도에 지원했지만 연락이 온 병원은 단 한 곳. 장 씨는 “당시 과연 내가 다시 일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회는 2011년에 찾아왔다. 오전에만 5시간씩, 원하는 시간에 일하면서도 4대 보험 등 정규직 대우를 받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서울 강서미즈메디병원 내시경과에서 일하며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있다. 장 씨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면 얼마 벌지 못하는데 시간선택제로 일하면 시간과 비례해서 대우를 받으니 만족한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아니었다면 과연 다시 병원에서 일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장 씨처럼 병원에서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대기업, 금융권, 공공기관에서 시작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의료계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와 중소병원협회는 올해부터 시간선택제의 다양한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간호사 증가
그동안 병원 업계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이 어려운 분야라는 인식이 강했다. 24시간 운영되는 곳이 많고, 근무도 3교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본인이 근무시간을 선택해서 일한다는 취지가 실현되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낮 근무가 많고 병실이 적은 중소병원과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수요가 생기고 있다.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의료 인력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동탄시티병원에서 일하는 권원규 임상병리사(44)는 “6년 동안 출산과 육아로 쉬다가 시간선택제로 재취업을 했는데, 육아와 일을 함께 잘 해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정규직과 대우가 동등하고, 내가 아르바이트가 아닌 전문인력으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표적 시간선택제의 나라인 네덜란드에서는 보건·사회서비스 업종의 시간선택제 종사비율이 무려 80%에 달한다”며 “시간선택제 도입을 통해 육체적·감정적 피로도가 높은 병원 종사자들의 업무 과중이 해소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근로자 병원 모두 ‘만족’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한 병원들의 만족도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우선 고질적인 간호인력 부족을 해소하는 데 숨통이 트였다. 뿐만 아니라 시간선택제로 병원에 재취업하는 간호사는 단순 파트타이머에 비해 업무 전문성이 높다.
2011년 5월 이후 총 10명이 평균 주 24시간씩 시간선택제 근무자로 일하고 있는 강서미즈메디병원의 이재욱 부장은 “많은 병원이 간호인력 부족을 호소하는데,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아주 좋은 해결책이다”라며 “간호사 자격증이 있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의 60%가 여성인데, 이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평가했다.
남연경 동탄시티병원 과장은 “시간선택제로 일하면 업무 시간이 줄기 때문에 업무 집중도가 늘어난다”며 “일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병원에 대한 정부 지원도 늘고 있다. 병원들은 월 80만 원 한도로 월 급여의 50%까지 1년간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의 사업주 부담금도 2년간 정부지원을 받게 된다. 정부지원 범위는 사업장 근로자 수의 30%까지다.
하지만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중소병원 관계자는 “간호사들이 저임금에 따른 근무만족도가 낮고 이로 인해 이직이 잦은 상황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이런 상황을 고착화할 수도 있다”며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만 일한다고 해서 임금이나 조건이 그 절반이 된다면 결국 경영진에 의해서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의료의 질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병원 업무의 특성상 환자 정보를 인수인계하는 등 연속성이 중요한데, 시간선택제가 늘어나면 업무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간선택제를 확대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 용인에서 척추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종합병원 중환자실 응급실 인력에서는 시간선택제를 도입할 수 없지만, 동네의원 중소병원에서는 순기능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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