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성호]어느 소방관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5일 03시 00분


이성호 사회부 기자
이성호 사회부 기자
A 소방장(42)은 올해로 경력 12년차 소방관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화마(火魔)와 사투를 벌이는 생활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이제는 주변에서 ‘베테랑’ 소리를 들을 정도다.

그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소방관 생활 내내 꿈꿨던 일이지만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다. A 소방장의 꿈은 ‘진짜 훈련’이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훈련은 미리 짜여진 각본 없이 화재 등 재난상황을 가상해 실시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계획만 있을 뿐 아무 예고 없이 진행되는 훈련인 셈이다.

소방서마다 조금 다르지만 보통 한 달에 10∼15회 각종 훈련을 한다. A 소방장 역시 지금까지 2000회 가깝게 훈련을 했다. 관공서 백화점 대형마트 전통시장 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훈련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훈련 때마다 ‘실제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예고된 시간에 예정된 사람들만 참가하는 훈련을 보면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훈련은 귀찮은 일’이라는 인식을 주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훈련 계획을 세울 때부터 문제였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의 훈련을 앞두고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영업활동 방해 여부다. 영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가 중요한 기준인 것이다. A 소방장은 “가능한 한 실제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훈련을 해야 소방관뿐 아니라 이용객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예고 없이 이뤄지는 진짜 훈련을 한 번이라도 해보는 것이 모든 소방관의 꿈이다”라고 털어놨다.

20일 오후 2시 전국적으로 화재 대피 훈련이 실시됐다. 1975년 민방위 창설 이후 39년 만에 처음 실시된 전국 규모 훈련이었다. 세월호 침몰을 비롯해 경기 고양시 버스터미널 화재,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 등 연이은 참사로 인해 마련됐다. 얼핏 시민들의 관심은 높아 보였다. 백화점 앞에는 쇼핑을 멈추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영화관의 스크린도 일제히 꺼졌다. 불평의 소리도 나왔지만 많은 사람들은 “안전불감증이 문제라니까…”라며 훈련에 참가했다. 과거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날 훈련 시작을 앞두고 일부 대형마트는 “10분 전에 계산을 마쳐 달라”는 안내 방송을 반복했다. 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매장 입구에서 막았다. 이 때문에 정작 훈련이 시작됐을 때 매장에는 대피할 손님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직원들만 분주했다. 또 매장에서만 대피가 이뤄지다 보니 손님들은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량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미용실이나 식당은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훈련에 참가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훈련을 반복한다고 원하는 수준의 효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생존의 법칙을 몸에 배게 하는 진짜 훈련이 필요하다. 소방관들의 꿈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성호 사회부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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