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병옥]原電 자동정지, 사고 아닌 안전하다는 신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5일 03시 00분


조병옥 한국수력원자력 안전본부장
조병옥 한국수력원자력 안전본부장
이 회사에 가면 사무실에 문턱이 없다. 대신 볼록거울이 있다. 직원들이 혹시라도 충돌할까 염려해서다. 곳곳에 소화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휴지통은 철제를 사용한다.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세계적 화학기업 듀폰 이야기다.

1802년 화약제조공장으로 출발한 듀폰은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고를 겪었지만 대응은 많이 달랐다. 여력이 부족해도 공장 안전에 투자했다. 그 결과 듀폰은 오늘날 안전문화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가 됐다.

듀폰의 안전 정책 중 백미는 ‘STOP프로그램’이다. 안전 문제가 생길 기미가 보이면 공장을 우선 정지시킨 뒤 해결책을 찾는다. 당장 입을 금전적 손해는 물론이고 납기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신뢰도 저하 위험까지 기꺼이 감수한다는 뜻이다.

원자력발전소 역시 마찬가지다. 미세한 이상 징후에도 발전소가 자동으로 정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일부에서는 정지를 사고의 징후로 해석하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확대해석에 불과하다. 수백만 개의 설비와 부품으로 이뤄진 원전에서 정지 원인은 무척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원전은 정지하면 안전하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잘 정지하면 안전이 확보되는 것이고, 고장 난 차가 정지하지 않고 계속 달리다 사고를 일으키는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장과 사고를 8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0∼3등급이 ‘고장(incident)’, 4∼7등급은 ‘사고(accident)’로 분류된다. 숫자가 높을수록 중대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사고는 물론이고 3등급의 고장도 없었다. 대부분 경미한 고장인 0등급이며, 2등급의 고장도 3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원전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대형 자연재해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대대적 안전설비 보강 등 하드웨어 안전시설을 보강했다.

설비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의 안전 최우선 문화는 더욱 중요하다. 조직, 인사, 문화 등 3대 분야에서 대혁신을 추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회의 전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자’는 메시지를 2∼3분간 공유하는 ‘세이프티 모먼트(safety moment)’도 시행중이다.

듀폰이 불미스러운 일을 정면 돌파해 가장 안전한 기업으로 거듭났듯이, 우리나라 원자력산업도 안전을 넘어 안심까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도록 크고 작은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조병옥 한국수력원자력 안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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