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언론인터뷰에서 “이제는 이 정부가 개혁을 거의 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미 레임덕 현상이 왔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중도보수로 꼽히는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레임덕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출범 1년 4개월밖에 안 된 박근혜 정부가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뜻하는 레임덕에 빠졌다는 데 동의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27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는 응답이 42%로 나타났다. 전주보다 1%포인트, 2주 전보다 6%가 떨어진 하향 추세다. 서울에선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40% 선이 무너져 37%다. 가장 큰 원인은 인사 문제로 지적된다. 지지층의 이탈이 레임덕의 한 신호인데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 합리적 보수층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의 유력 당권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27일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독선으로 빠진다”며 “박 대통령이 독선에 빠질 기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를 겨냥한 포퓰리즘적 발언일 수 있지만 한때 친박(친박근혜) 좌장 격이었던 중진의 경고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그 자신도 부산 출신인 김 의원은 “권력서열 2위에서 9위까지 모두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인사의 협소함과 폐쇄성을 지적했다. 인사권을 주무르는 이들이 국정운영보다 권력유지에 더 관심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은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고 인사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하는 선에서 인사논란을 마무리 짓고 성과로 말하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국정쇄신의 출발점이 돼야 할 인사의 잇단 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이도, 사과하는 이도 없이 넘어가는 현실에 적잖은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못 거두고 탈락한 홍명보 감독은 사과라도 했는데”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당권 경쟁에 나선 서청원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실패는 곧 정권재창출의 실패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자신이 당권을 맡아야 한다는 말이겠지만 청와대가 달라지지 못하면 새누리당이라도 민심에 따라 정부를 견인하는 여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통령 뒤에만 숨는 ‘마마보이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김영우 의원), “박근혜 정부의 잇단 인사 참사는 정당의 후진성 때문”(이인제 의원)이라는 정당개조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세월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개혁 다짐은 동력을 잃고 레임덕이 실제 상황으로 닥칠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응답을 듣고 싶어 하는 국민이 아직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