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발생한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 용의자로 5월 22일 중국에서 검거된 팽모 씨(44)에 대해 경찰이 처음 확보한 단서는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다른 살인사건과 달리 돈이나 다른 물건도 없어지지 않았고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는 심증만 확실했을 뿐이었다.
팽 씨는 범행 직후 택시를 4차례 갈아타며 도주할 정도로 치밀했다. 택시를 내린 곳에서도 바로 갈아타지 않고, 한참을 걷거나 길을 건너서 택시를 바꿔 탔다. 1년여 동안 김형식 의원이 주변을 관찰하고 팽 씨에게 지시한 대로였다. 서울강서경찰서 강력계 형사 35명은 3개월여 동안 주말을 반납하고 폐쇄회로(CC)TV 1500여 대와 서울 및 인천의 택시 3만여 대를 추적했다. 계획범죄의 단서를 잡기 위해 경찰은 피해자 주변 조사팀과 현장 확인팀, CCTV 분석팀 등 3개 팀으로 인력을 나눴다. 범행을 저지르고 빌딩을 나간 뒤 인근에선 범인의 모습이 잡히지 않아 그 주변 CCTV 210대를 모두 분석한 결과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 CCTV에서 택시를 타는 용의자를 걸음걸이와 옷차림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흘 만에 찾아낸 첫 모습이었다.
그러나 용의자의 얼굴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서울의 택시는 5만여 대. 경찰은 서울 강서구에 있는 택시회사를 직접 찾아가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범행 시간에 주변에 있었던 택시기사들을 전부 확인했다. 그 결과 한 택시기사로부터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까지 데려다준 것 같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택시기사의 진술과는 달리 팽 씨는 서울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에서 내린 팽 씨는 도보로 이동해 다른 택시로 갈아탔다. 이후 경기 부천시와 인천 연수구 등 팽 씨의 도주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도 경찰은 인근 CCTV를 샅샅이 확인하며 택시기사들의 애매한 진술을 검증했다.
팽 씨의 꼬리가 잡힌 곳은 3월 16일 인천 연수구의 한 사우나. 골목길에는 총 5대의 CCTV가 설치돼 팽 씨가 드나든 모습이 모두 나와야 했다. 하지만 검은색 옷을 입고 걸음을 뒤뚱거리는 남성의 모습은 골목길로 접어드는 CCTV에는 찍혔지만 반대편 골목으로 나오는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 경찰이 골목길 안을 확인해보니 한 사우나가 있었고 이곳에서 “팽 씨가 10년 단골”이라는 얘기를 듣고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은 중국으로 도주한 팽 씨를 검거하기 위해 중국 공안과 공조를 했다. 결국 5월 22일 중국 현지에서 팽 씨를 검거했고 6월 24일 신병을 넘겨받았다. 오상택 강서경찰서 강력계장은 “살이 7kg이나 빠질 정도로 집요하게 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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