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거에서는 불쌍한 후보가 유리하다. 측은지심(惻隱之心·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다른 감정은 물론이고 이성(理性)까지도 압도하곤 한다. 돈 많은 후보에겐 “권력까지 가지려 하느냐”며 눈꼬리를 올리지만 빚 많은 후보에겐 “집안 간수나 잘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참 안돼 보여서 승리한 정치인이다. 부산 선거에서 세 번이나 실패한 아픔이 표심을 흔들었다. 측은지심은 선거가 끝나면 잠복하는 특성이 있다. 그가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보다 ‘어떻게 그렇게 말하나’라는 싸늘한 반응이 더 많았다. 국민은 불쌍한 후보에게 끌리지만 잘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참 독특하다. 가여워하는 국민이 여전히 많으니 말이다. “혈혈단신(孑孑單身) 대통령, 가엽지 않니.” 6·4지방선거 때 나이 든 부모로부터 이런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받은 30∼50대 지인이 적지 않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60대 이상의 대통령 지지도는 80∼90%대. 이 ‘가엽지 않니’ 표(票)가 여당의 참패를 막았다. 해외순방 비행기에서 홀로 내리는 대통령 모습마저 안쓰럽다. ‘가여운 대통령이 이 나라를 잘 이끌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정성 어린 기도도 한다. 기자의 어머니도 그렇다. 그 기도가 그들에겐 애국이다. 어머니를 봐서 나도 기도 한번 하겠다. 효도하는 마음으로.
해외순방의 시차를 빨리 극복하도록 도와주소서. 단전호흡으로 단련돼서 물리적 시차(時差)는 문제없을 것이다. 국내외에서 달리 보이는 시각, 시차(視差)가 늘 문제다.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해외순방 직후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자 “마녀사냥”이란 짜증스러운 표현으로 답했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해외에서 본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다. 그러나 입국 순간 ‘원더풀 코리아’는 사라진다. 한국 정치의 시곗바늘은 빠른 세상에 비해 한없이 느리거나, 때론 거꾸로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경질 총리의 유임 결정에서 대통령의 시차 후유증이 느껴진다. ‘마이 웨이(my way)’의 조짐도 보인다.
귀를 크게 열어 널리 인재를 모으도록 도와주소서. 이 정부 인사(人事)는 임명 전에는 ‘누가 중용될지’ 알기 어렵고, 임명 뒤에는 ‘왜 중용됐는지’ 더 알기 어렵다. 비판하다가 지친 기자들에게서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수준이다. ‘이런 인물은 어떠냐’는 공개 천거 칼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선 캐치프레이즈 ‘준비된 여성 대통령’에서 지혜를 찾게 하소서. 세월호 참사로 ‘준비된 건 거의 없음’을 알게 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은 살아 있다. 20∼40대 여성의 지지도가 계속 떨어진다. 그들은 ‘가엽지 않니’에 공감하지 않는다. 여성 대통령의 육아, 교육, 양성 평등 정책 등이 더 궁금하다. 그들에게 뭘 보여줬는가.
역시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기도가 비판이나 충고처럼 돼버렸다. 이 기도는 무시당해도 섭섭할 것 없다. 단, 대통령을 ‘가여운 딸’처럼 염려하는 어머니들의 간절한 기도가 외면당해선 안 된다. 그 실망감, 배신감은 무엇보다 클 것이다.
대통령 국정수행 부정평가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50%대에 진입했다는 소식(리얼미터의 30일 보도자료)이 들린다. ‘가엽지 않니’ 지지층의 안타까운 한숨이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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