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다른 게 먼저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같은 게 먼저다. 외국에서 맞닥뜨리는 풍경과 삶 얘기다.
재작년 남미 출장을 다녀오다 페루 리마에서 40대 캐나다인을 알게 됐다. 한나절 버스투어를 같이 한 덕분에 같은 나이대로서 느끼는 직장 생활의 애환, 밴쿠버와 서울에서 겪는 양육의 어려움, 인생에 대한 느낌을 나눌 수 있었다. 어찌 그리 비슷한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감탄했다.
280석의 한 소극장이 한국 전통공연으로 이달 100만 관객을 맞는다. 서울 중구 정동극장 얘기다. 17년 동안의 꾸준한 인기 덕분이다.
관람객 중엔 외국인이 많다. 몇 해 전 이 극장의 무용극 ‘춘향연가’를 알게 된 것도 외국인 친구를 통해서였다. 아주 재미있었다는 칭송과 함께.
이 극장의 전통 상설공연 변천을 보면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투영됐다는 느낌이 든다. 초기에는 무용과 기악, 풍물을 모두 보여주는 ‘전통예술무대’로 꾸려졌다. 1998년부터 10년간 이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2008년 ‘미소’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창작 무용극 ‘춘향연가’를 올렸다. 올해는 조선 풍자문학을 바탕으로 한 무용극 ‘배비장전’을 선보였다.
전반기가 낯선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공연이었다면, 후반기는 낯을 익힌 한국을 좀 더 알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연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들은 가야금 장단에 맞춘 한복 춤에 새로움을 느끼면서도, 춘향과 배비장의 스토리에선 인간과 삶에 대한 공통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배비장전’은 지난달 중국 푸저우(福州)와 상하이(上海)에서 닷새간 5000명의 중국인에게도 선보였다. 호평을 받자 중국 현지 기획사는 공연 도시를 늘리자고 제안했고, 내년 상반기 순회공연을 협의 중이라고 극장 측은 밝혔다.
외국인이 많이 보는 공연이라 ‘배비장전’을 만들 때 더 신경 쓴 것이 있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제작진의 현명한 답이 돌아왔다. 안무를 맡은 김은희 씨는 “‘애랑’을 보고 싶어 하는 조선시대 배비장의 상사병 증세가 지금과 다를까요? 또 나라가 달라진다고 인간의 그 감성이 다를까요?”라고 되물었다. ‘춘향연가’가 재미있었다는 외국인 친구도 아마 그런 보편적 감성에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귀국길에 내가 캐나다 사람과 공감의 ‘하이파이브’를 했듯이 말이다.
예술은 국가를 초월해 인간 그 자체를 보는 것이다. 곧 개막하는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의 ‘나비부인’을, 그 배경이 일본이라고 군국주의로 향하는 지금의 일본과 연결짓는 것이 어색한 것도 이런 연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이영애의 대장금, 삼성의 휴대전화로 한국을 낯설게 여기는 세계인은 많이 줄었다. 전통 공연이 가야금과 한복을 넘어, 보편적 인간성에 더 집중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다음 100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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