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영원한 리베로’로 칭송받던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심한 욕을 안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홍 감독도 예외가 아니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귀국한 홍 감독은 공항에서 ‘엿 세례’를 받았다. 인터넷에선 홍 감독을 조롱하고 비꼬는 패러디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진한 성적으로 가장 상처받은 건 홍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일 것이다. 박주영과 관련된 ‘의리 논란’만 해도 그렇다. 상식적으로 어떤 감독이 월드컵 승리를 의리와 맞바꾼단 말인가. 박주영의 기용은 여러 가지 팀 사정을 고려해 홍 감독이 선택한 한 카드였을 뿐이다.
그러나 홍 감독의 선택이 실패로 끝나자 일부 언론들까지 여론에 편승해 ‘인격 모독’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근거는 막상 뚜껑을 열기 전까진 아무도 몰랐던 ‘결과론’이다.
‘결과론’으로 상처 입기로는 프로야구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야구는 매 타석, 심지어는 공 하나하나마다 작전이 가능한 종목이다. 감독은 한 경기에 수십 번, 심지어는 수백 번의 선택을 한다. 모든 선택은 선수 개인의 능력, 경기 상황 등 수십 가지 사항을 종합해서 이뤄진다. 그렇지만 대개의 팬들은 결과만 본다.
성적 좋은 감독도 욕하는 사람이 있을진대 성적까지 안 좋은 감독은 말할 나위가 없다. 종교와 출신 지역, 학교 등 꼬투리 잡힐 거리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인터넷, 특히 댓글을 보지 않는 감독들이 많다. 그런데 어쩌랴. 자신은 그 글을 보지 않아도 이를 알려 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안타깝게도 이말 저말 다 신경 쓰다 자신의 야구 색깔을 잃어버리는 감독도 있다.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주변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만의 야구 색깔을 지켜내며 성공한 감독으로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사진) 정도가 꼽힌다.
그중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이었던 로이스터 감독은 한국말을 모른다는 게 장점으로 작용했다. 복잡다단하며 오묘하기까지 한 악성 댓글을 미국 사람인 로이스터 감독에게 통역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말과 글로 상처 받을 일이 없었던 그는 순수하게 성적으로만 평가받았다. ‘노 피어(No Fear)’로 상징되는 두려움 없는 야구는 그랬기에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로이스터 감독의 진면목은 2009년 두산과 치른 준플레이오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추석이었던 10월 3일 홈인 사직구장에서 패하면서 롯데는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경기 후 한복으로 갈아입고 웃는 얼굴로 팬들 앞에 섰다. 그리고 두산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만약 한국 감독이 그랬다면 그는 살아서 운동장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감독들이 유독 수난을 겪는 요즘이기에 정말 용감했던 로이스터 감독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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