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은 3일 한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동아일보에 보낸 ‘순풍에 돛을 달자’라는 기고에서 “중-한 관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 것이 이번 방문의 주요한 임무”라고 밝혔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한국을 국빈 방문하면서 대상국 언론에 기고를 한 것은 처음이다.
시 주석은 기고에서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당시 자신이 박 대통령에게 중국 서예작품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천 리 멀리까지 보기 위해 다시 누각을 한 층 더 오르네)’를 선물한 인연을 거론하면서 “양국 관계의 미래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작품은 당나라 시인 왕지환이 쓴 ‘등관작루(登관雀樓·관작루에 올라)’에 들어 있는 구절이다. 한국을 향해 미래의 안보 지형 변화를 내다보며 보다 큰 그림을 그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시 주석의 이번 기고는 표면적으로는 양국의 우호를 강조하는 부드러운 문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주요 현안에는 완곡한 표현 속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 “평화 해치는 행동 반대”… 북핵-美MD 동시 견제 ▼
무엇보다 시 주석은 “지역 안정의 대국(大局)에 손해를 끼치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안정이 중국의 핵심 이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자 한미동맹 강화가 중국
견제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이 시 주석 방한에 앞서 1일
베이징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한국은 동맹국이지만 한국은 미국이 제기하는 요구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밝힌
점과 같은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류 부부장은 미국이 한국의 동참을 희망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 체제 문제에 대해
“한미 관계 강화는 동북아 상호 신뢰 강화와 평화안전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시 주석이
“일단 동란이 발생하면 역내 국가 누구도 혼자만 무사할 수 없다”고 밝힌 구절은 한반도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정책을 다시
확인한 것이지만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 시 주석이 4월 보아오 포럼에서 “(아시아) 지역 일대에 혼란을
초래하는 어떤 나라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 특정 국가를 가리키지는 않았지만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경고라는 해석이 많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 주석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가속화 등 협력 강화를 통해 이익의 파이를 키우자”고 강조한 것은 FTA 협상에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특히 시 주석은 기고에서 양국 및 국민 간 우호를 강조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해 이번 방문이 ‘인문 외교’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보여줬다. ‘천 냥 주고 이웃을 산다’며 한국을 ‘좋은 이웃’이라고 평가하고 양국은 ‘동반자’이자 ‘이익 공동체’가
됐다고도 했다. 시 주석은 “양국 국민은 좋은 인연을 널리 맺고 포용적인 자세로 새로운 친선의 장을 써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류(韓流) 등으로 양국 국민이 친밀해진 가운데 돌발적인 사건들이 불거져 서로를 소원하게 하지 않도록 감싸 안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시 주석은 이번 기고를 동아일보를 비롯해 한국의 3대 일간지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한국어와 중국어로 함께 보냈다. 중국어 원문은 동아닷컴(www.donga.com)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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