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두 영화의 ‘썸’타기

에밀 졸라 소설에 뿌리 둔 영화 ‘박쥐’ vs ‘테레즈 라캥’

박찬욱 감독의 ‘박쥐’(왼쪽)와 찰리 스트레이턴 감독의 ‘테레즈 라캥’. 같은 소설에 뿌리를 둔 두 영화는 불륜에 빠진 아내와 남편의 친구가 남편을 살해한다는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다. 판씨네마 제공·동아일보DB

《 10일 개봉하는 미국 영화 ‘테레즈 라캥’은 묘한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를 지녔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겼는데, 박찬욱 감독의 2009년 영화 ‘박쥐’와의 인연(?)으로 더 화제가 됐다. 당시 박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혔듯, 두 영화는 전혀 다르지만 상당히 닮은 얼개를 공유한 ‘사돈의 팔촌’이다. 두 영화는 어떤 ‘썸’을 타고 있을까. 작품성이야 둘 다 훌륭하니, 지극히 지엽적인 것들을 살펴보자. 》　　　　　

　　　　　　

▼ 19세기 프랑스선 옷 입고 ‘일’치렀나 ▼
정사신 몰입지수
박쥐 ★★☆ 테레즈 ★★★☆

체면 차리지 말고, 제일 궁금한 것부터 얘기하자. 알다시피 둘 다 불륜이 소재다. 그래, 그 장면이 빠질 리 없다. 게다가 둘 다 청소년 관람불가.

총량이나 노출도만 따지자면 박쥐의 한판승이다. 잦고 세고 진하다. 근데 그리 침이 꿀꺽 넘어가진 않는다. 뭐랄까, 그냥 흐름상 그런 신 나올 때 돼서 나온 느낌. 반면 테레즈 라캥은 이게 왜 청소년 관람불가인가 싶다. 19세기 프랑스에선 “성행위는 옷 다 갖춰 입고 치르는 의전”이었나 보다. 그런데 희한하게 두근두근 찌릿찌릿하다. 쟤들이 왜 저러는지 포석을 잘 깔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망이 전해진달까. 게다가 아래층엔 시어머니가…. 역시 불륜은 스릴이다.

▼ 하룻밤 5번… 송광호를 누가 당하랴 ▼
남녀 주인공 (성적) 끌림 지수
박쥐 ★★★ 테레즈 ★★

이럴 수가, 송강호(상현 역)가 섹시해 보일 줄이야. 테레즈 라캥의 바람남 로랑 역을 맡은 오스카 아이작은 출중한 외모에 연기력도 상당한 배우. 하지만 느끼한 구레나룻이 영 거슬린다. 테레즈(엘리자베스 올슨)가 그를 선택한 건 젊은 남성이 그밖에 없었던 탓인 것만 같다. 송강호는 태주(김옥빈) 대사 하나면 끝. “(남편은) 5년에 1번이더니, (박쥐는) 하룻밤에 5번….”

태주나 테레즈는 둘 다 훌륭한 여인네. 두 영화 모두 발을 주목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화면을 채우는 태주의 발은 거칠지만 보듬어주고 싶다. 하지만 뱀파이어로 변하는 순간, 그의 발은 깨끗하지만 감흥이 떨어진다. 테레즈의 발은 딱 한 번이지만 치명적이다. 양말을 신어도 이렇게 드러내면 야할 수 있다.

▼ 낯익은 얼굴… 아! 말포이가 나왔네 ▼
개그 만족 지수
박쥐 ★☆ 테레즈 ★★☆

원래 박찬욱 감독은 유머 코드에 능숙하다. 근데 박쥐는 개봉 당시 봤을 때도 관객석에서 그다지 웃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시어머니가 가게 문 닫으며 하는 한마디. “시마이(순화어로는 ‘끝’).” 웃음도 거기서 멈췄다.

진지한 영화 테레즈 라캥은 웃기려 덤비는 대목은 없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개그가 폭발력은 큰 법. 테레즈의 병약한 남편 카미유(톰 펠턴)는 첫 등장부터 낯익다. 어디서 봤지…. 10분쯤 뒤 빵 터졌다. “해리 포터의 말포이!” 아, 그 밤톨처럼 잘생겼던 아이는 어디 가고. 최근 해리의 모습까지 떠오르며 웃다 슬퍼졌다. 제발, 헤르미온느만은.

▼ 결말을 안다고? 색감을 즐겨라 ▼
반전 기대 지수
박쥐 ☆ 테레즈 ☆

원작을 읽었거나 박쥐를 본 이라면 테레즈 라캥은 아시는 대로 흘러간다. ‘브루스 윌리스는 귀신이다’라고? 영화평론가 허지웅 씨는 한 TV프로그램에서 “식스 센스는 결말을 알고 봐도 아름다운 영화”라고 했다.

테레즈 라캥은 영화를 관통하는 색감을 즐기시길. 1860년대 파리의 욕망은 푸르스름한 잿빛에 감싸인 채 시궁창으로 흘러간다. 마치 테레즈의 인생살이처럼.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