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2013년 4월 2일) 속기록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이렇게 ‘모범적인’ 인사청문회가 있을까 싶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16명 가운데 도덕성을 따져 물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로지 검찰개혁 같은 정책과 그의 검사 시절 업무와 관련한 질문뿐이었다.
진짜 기가 막힌 건 야당 의원들의 칭찬 릴레이다. 박범계 의원은 “인사 청문을 위해서 저희 보좌진들에게 한번 ‘봐주지 말고 파 봐라’ 그랬더니 파면 팔수록 미담만 나온다고…”라고 말했다. 최원식 의원은 “후보자의 이력을 죽 스크린하다 보니까 겸허하고 청렴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그런 개인 관리를 아주 잘해 오신 것 같아요. 그래서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고요”라고 했다. 박지원 의원은 “우리 채동욱 후보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인사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치켜세웠다.
채동욱은 혼외자(婚外子)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노철래 의원(새누리당)이 ‘혹시 평상시에 검찰 수장까지 되겠다 하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는가’라고 묻자 그는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뿐”이라고 답했다. 그 후 언론 보도로 혼외자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그는 부인(否認)으로 일관했다. 검찰은 2014년 5월 7일 그의 혼외자 의혹이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누군가가 인사청문 대상에 올라가면 야당엔 온갖 제보가 쏟아진다. 야당 의원들의 신상 캐기는 집요하다. 최근 국회에 인사청문이 요청된 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야당 측은 배우자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창 시절 전체 생활기록부 사본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 야당이 채동욱에 대해서는 깜깜이었다니 그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설사 인사청문회 때는 몰랐다 쳐도 혼외자 의혹이 제기된 후에도 야당은 그의 도덕성에 대해선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야당엔 혼외자 문제가 하찮은 것인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당 자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총체적 부정선거’로 규정한 비례대표 선거로 국회의원이 됐다. 더구나 내란음모 사건으로 법원 1심에서 징역 12년의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야당은 이런 이석기를 징계하는 데 한사코 반대해왔다. 그래서 이석기는 아직도 국회의원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석기는 10여 년 전 이미 노무현 정부의 은혜를 입은 바 있다. 반(反)국가사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전향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노무현 정부는 그를 특별사면으로 풀어주고 복권까지 시켜줬다.
야당은 이석기의 제명을 막으려고 온갖 절차와 논리를 다 동원했다. 처음엔 검찰 기소를 보고 판단하자더니 나중엔 1심 판결, 다음엔 대법원 확정 판결 운운하는 식으로 점점 도를 높여갔다. 이석기에게 자진 사퇴를 촉구한 적도 없다. 야당엔 비례대표 부정 당선과 내란음모 주도가 하찮은 것인가.
반면 교회 강연 때문에 역사관 논란을 빚은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태도는 유달리 가혹했다. 실체적 진실을 따져 보려고 시도한 흔적이 없다. 자진 사퇴나 지명 철회를 요구하며 제도적으로 보장된 소명의 기회마저 주려고 하지 않았다. 문창극이 도덕성과 국가관에서 채동욱이나 이석기보다 못한가.
새정치민주연합은 역사관 논란이 불거지기 전 문창극이 언론인 시절 칼럼으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을 특히 문제 삼았다. 혹시 역사관 자체보다 ‘내 편, 네 편’을 적격 부적격의 판단 잣대로 삼은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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