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10가지-따봉, 프란치스코!’ 책 통해
교황의 행동과 말에 담긴 속뜻 정리한 차·동·엽 신부
따뜻한 말과 미소로 행복 선사… 거창한 말 없이도 혁명-개혁의 길
분노마저 예수의 방식으로 표출… 한국 정치인들 ‘고수의 手’ 연구해야
《 “프란치스코 교황을 연구하면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큰 정치, 역사에서 오래가는 정치를 할 수 있다.” ‘무지개 원리’ ‘희망의 귀환’ 등의 베스트셀러 저자인 차동엽 신부(56)가 최근 ‘교황의 10가지-따봉, 프란치스코!’ (위즈앤비즈·사진)를 펴냈다. ‘따봉…’은 교황의 행동과 말에 담긴 속뜻을 키워드로 정리해 쉽게 전한 책. “대담이나 강론을 다룬 기존 책이 신학적으로 깊은 얘기여서 일반인들에게 좀 대중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는 차 신부를 1일 만났다. 》
―정말 궁금한 게 있다. 그분의 행복한, 또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미소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
“(웃음) 내 보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쁨의 비밀, 행복의 비밀을 깨달은 대가(大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쁨의 광채가 나온다. 사람들을 살리고, 즐겁게 하고, 나누는 기쁨을 깨달은 분이다. 억지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점은 없나? 아르헨티나 대교구 보좌주교 시절 아리스티 신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분 손에 쥐여진 묵주를 가져왔다는 고백이 책에 나와 있던데.
“그분은 그 순간 아리스티 신부의 얼굴을 보며 반성하면서 ‘당신의 자비를 반만이라도 나에게 주십시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아리스티 신부의 자비,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탐한 것이다. 자비와 사랑을 배우고 싶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거룩한 탐욕’인 셈이다.”
―교황에게 좌절은 없었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황의 끊임없는 관심은 아르헨티나에서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찾아야 한다. 경제 부국에서 몰락한 아르헨티나의 역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예민한 고수(高手)가 느낀 슬픔과 고통은 더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을 테니까. 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없다는 것은 큰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방신학 같은 급진적인 길을 가지 않았다.
“그분의 해법은 이른바 운동가가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아니다. 예수의 방식을 선택했다. 어려운 사람과 같이 울고 웃고 나누는 방식이다. 선택 또는 의견이 다른 이들마저도 감싸는 포용이었다.”
―진짜 결점은 없는 분인가.
“교황께선 젊은 시절의 즉흥성과 독선으로 인한 실수를 여러 차례 고백했다. 마음이 급해 구조와 제도의 개선 같은 급한 개혁을 추진했지만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반성 뒤 오늘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책에선 교황의 언행을 한마디로 ‘동행의 미학’이라고 표현한다.
“그분은 갑작스럽게 차에서 내려 사람들을 만나 ‘본 조르노(안녕하세요)’ 하며 안부를 묻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시선을 맞춘다. 앞서 가는 사람에게는 조금 속도를 늦춰 다른 사람들과 나누자 하고, 뒤에 처진 이들은 위로하며 끌어준다. (교회에 적대적인) 반대 그룹에서 볼 때도 교황은 대립하는 상징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교황은 좋은 의미의 ‘무서운’ 전략가이고, 말과 행동의 파장을 아는 분이다.”
―말씀 중에 우리 정치 지도자의 모습도 보인다.
“바로 그렇다. 교황, 금세기 최고 고수의 수(手)를 연구하면 큰 정치, 역사에 오래가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박근혜 대통령은 진정성을 갖고 더욱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처음에는 쇼다, 뭐다 말이 많겠지만 개의치 않고 어려운 분들과 동행한다면 ‘아, 저분이 부자만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얻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꿈꾸는 천년 지속되는 변화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이 교황 명을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으로 정한 것에서 메시지를 명확하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가난과 겸손, 사랑이다. 예수에 이어 프란치스코 성인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지금 교황은 혁명이니 개혁이니, 이런 거창한 말없이 그 길을 걷고 있다.”
―정말 ‘무서운’ 분이다.
“교황이 오래된 구두를 그대로 신고, 여행자 숙소에 머물고, 의전을 거절하는 것은 교회 안팎의 비본질적인 ‘장식’을 거부하겠다는 메시지다. 고위 성직자 입장에선 ‘보통 이렇게 합니다’라고 하면 관행을 거부하기 매우 힘들다. 하지만 교황은 예수로 상징되는 초기 교회의 소박함과 단순함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분은 사랑은 마라톤이지, 계주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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