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요지경 性동영상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낯뜨거운 ‘과거’ 지워드립니다”… 전문업체까지 등장

섹스 동영상 삭제 전문 업체인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김호진 대표가 서울 강남구 언주로 사무실에서 동영상 삭제 작업을 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섹스 동영상 삭제는 해당 동영상이 올라온 웹하드와 P2P 사이트를 모두 조사해 삭제 요청을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동의 없이 올려진 섹스 동영상은 명백히 불법이기에 거의 모든 사이트에서 동영상을 삭제할 수 있다고 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섹스 동영상 삭제 전문 업체인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김호진 대표가 서울 강남구 언주로 사무실에서 동영상 삭제 작업을 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섹스 동영상 삭제는 해당 동영상이 올라온 웹하드와 P2P 사이트를 모두 조사해 삭제 요청을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동의 없이 올려진 섹스 동영상은 명백히 불법이기에 거의 모든 사이트에서 동영상을 삭제할 수 있다고 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여대생 A 씨(24)는 2010년 학교 동기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한 인터넷 검색사이트에 A 씨 이름과 대학 이름을 넣어 검색하면 ‘○○대 △△△’라는 제목의 섹스 동영상이 수십 개 나온다는 거였다. 깜짝 놀라 확인해 보니 A 씨가 고교 3학년 당시 사귀던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철없는 호기심에 찍었던 동영상이 유포돼 있었다. 동영상 후반부에는 A 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찍어 올린 일상 사진까지 덧붙어 있었다. 고교 시절 사귀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복수심에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뿌린 거였다.

A 씨는 휴학한 뒤 3년 넘게 동영상이 올라온 웹하드와 파일공유(P2P) 사이트에 혼자 삭제 요청을 해가며 싸워 왔다. 그러나 제목만 바뀐 같은 동영상이 계속 올라왔다. A 씨는 고통에 시달리다 섹스 동영상 삭제 전문 업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삭제 작업을 의뢰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을 모두 지우는 비용은 1000만 원에 달했지만 지옥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섹스 동영상 삭제해 드립니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는 인터넷에 퍼진 섹스 동영상을 지워주는 업체다. 지난해 6월 인터넷 악성 댓글 삭제 전문 업체로 시작했다가 섹스 동영상 삭제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걸 알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해당 동영상의 고유한 패턴을 업체가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가 자동으로 수집된다. 제목을 바꿔 달아도 동영상 내용이 같다면 모두 추출할 수 있다. 업체는 의뢰인을 대신해 이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해당 동영상 삭제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다. 김호진 대표(45)는 “웹하드와 P2P 사이트들은 개인 섹스 동영상 게시가 명백한 불법이라는 걸 알기에 법적 처벌이 두려워 대부분 바로 삭제한다”고 말했다.

섹스 동영상을 찍어 유포하는 건 명백한 범죄 행위라 피해자가 신고하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 김모 씨(24)는 1년여 동안 사귄 여자친구(20)가 지난해 4월 이별을 통보하자 8차례에 걸쳐 섹스 동영상을 인터넷에 뿌리겠다고 협박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반응이 없자 여자친구의 실명과 나이, 대학교 학과 등을 적은 섹스 동영상을 인터넷에 뿌렸다. 여자친구가 자연유산을 해 휴학했음에도 “8주차 태아를 불법 낙태하고 왕따를 당해 학교를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는 허위 사실까지 올렸다. 김 씨는 협박과 음란물 유포,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등으로 징역 2년 6개월에 처해졌다.

경찰에 신고하면 김 씨 같은 유포자를 처벌할 수는 있지만 인터넷에 뿌려진 동영상을 모두 지울 수는 없다. 섹스 동영상 유포 범죄는 그 특성상 2차 피해가 훨씬 크지만 경찰이나 검찰이 동영상을 일일이 찾아 삭제하기도 인력 구조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동영상 삭제를 강제할 법률도 없다. 이런 점에 착안해 섹스 동영상 삭제 전문 업체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 업체에 들어오는 섹스 동영상 삭제 의뢰는 한 달 평균 10여 건. 삭제 비용은 평균 1000만 원 선으로 비싼 편이다. 동영상이 올려진 모든 사이트에 일일이 삭제를 요구하는 메일을 보내는 게 ‘수작업’이어서 직원 40여 명의 인건비가 많이 든다고 한다. 삭제를 요청한 뒤 또다시 동영상이 올라올 수 있어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비용이 비싸다는 게 업체의 주장이다. 성인에겐 고가의 비용을 받지만 미성년자에게는 무료로 삭제 작업을 해주고 있다. 김 대표는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청소년이 인터넷에 퍼지는 섹스 동영상을 보고 괴로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섹스 동영상을 찍는 이유

섹스 동영상은 상대 몰래 일방적으로 찍히기도 하지만 젊은 연인 사이에선 자발적으로 찍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자가 남자보다 성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기에 대부분 남자가 사랑 등을 빌미로 여자를 설득해 찍는다. 상호 동의하에 섹스 동영상을 찍는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

대기업 사원 B 씨(29)는 과시욕에 섹스 동영상을 찍는다. ‘우리 둘만 본다’는 조건을 걸고 여자친구의 동의를 받지만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르면 자랑 삼아 스마트폰을 꺼내곤 했다. 화면 속 여성을 보려고 몰려드는 친구들을 보면 남자로서 우월감을 느낀다고 했다.

전문직 C 씨(30)는 섹스 동영상을 통해 여자친구와의 사랑을 확인한다. C 씨는 “그만큼 내 여자가 나를 굳게 믿으니까 동영상 찍는 걸 허락한다는 생각에 기쁘다”며 “여자친구를 자주 못 만날 때는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인들이 자발적으로 성관계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퇴폐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이들은 주로 성관계를 하면서 동영상을 찍는 순간 ‘금기’를 넘어선다는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 둘만의 비밀을 공개적으로 노출한다. 자랑 섞인 말들을 담아 올리면 부러워하는 댓글이 쏟아진다. 이런 사이트는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경찰이 단속할 때마다 주소만 바꿔가며 숨바꼭질을 해버리기에 사실상 근절이 불가능하다.

반면 상대 몰래 섹스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인터넷에 유포하면 명백한 범죄 행위가 된다. 최모 씨(41)는 2012년 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경기 성남시 일대 오피스텔에서 여성 5명과 성매매를 하면서 그때마다 동영상을 몰래 찍어 18회에 걸쳐 인터넷에 올리다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에 처해졌다. 동영상을 찍은 건 금전이나 지속적인 만남 등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재미를 위해서”였다.

섹스 동영상 피해자는 유포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수 있지만 배상액이 미미한 게 현실이다. 20대 여성 B 씨는 2010년 10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남자친구와의 섹스 동영상을 퍼뜨린 유포자 5명을 상대로 2012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각각 200만 원을 받아내는 데 그쳤다. B 씨는 매일 120여 개의 웹하드와 P2P 사이트를 뒤지며 자신의 실명과 거주지, 나이 등이 제목으로 적힌 동영상들과 외로운 사투를 벌이는 동안 대인기피증에 걸리고 자살 충동까지 느낄 만큼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보상하기엔 턱없는 금액이었다. 30대 커플 G 씨와 H 씨도 웹하드에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섹스 동영상을 보관했다가 유출돼 2012년부터 32회에 걸쳐 유포자 100여 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각각 20만∼100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

용돈벌이에 희생되는 섹스 동영상 피해자

2013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된 섹스 동영상 피해 사례를 다룬 기사.
2013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된 섹스 동영상 피해 사례를 다룬 기사.
섹스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독버섯처럼 빠르게 퍼지는 건 원초적 관음증을 자극하는 데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동영상이 주로 뿌려지는 웹하드나 P2P 사이트는 개인이 콘텐츠에 가격을 매겨 올려두면 불특정 다수가 현금화가 가능한 포인트를 내고 내려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동영상을 올리는 이들은 용돈벌이나 하려는 가벼운 마음에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이달 초 P2P 사이트에 섹스 동영상을 올렸다가 누리꾼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된 김모 씨(35·여·무직)는 “허리가 아파 일을 못하고 있어 영화를 내려받는 포인트나 벌려는 마음으로 섹스 동영상을 올렸다”고 털어놓았다.

섹스 동영상은 저작권이 없기에 피해자가 직접 보기 전까진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날개 돋친 듯 퍼져 나간다. 피해자 개인이 수백 개에 달하는 웹하드나 P2P 사이트를 일일이 들여다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관련 업체가 돈벌이가 되는 섹스 동영상을 굳이 스스로 지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섹스 동영상은 피해자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지만 음란물 유포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약한 편이다. 강모 씨(53)는 2013년 3월 10일부터 일주일 만에 P2P 사이트에 여중·여고생들이 등장하는 아동음란물 47개를 포함해 섹스 동영상 3431개를 무차별적으로 올렸지만 1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형에 그쳤다. 동영상으로 거둔 수익이 19만여 원에 불과하고 범죄 전력이 없는 데다 반성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모 씨(34)도 P2P 사이트에 아동음란물을 포함해 섹스 동영상 47개를 올린 혐의로 기소됐지만 처벌은 벌금 150만 원뿐이었다.

섹스 동영상 범죄를 원천적으로 막으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성관계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기지 말아야 한다. 섹스 동영상 삭제 업체를 찾은 의뢰인 대부분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 자살을 기도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제3자가 야외에서의 성관계 장면을 망원 렌즈 등으로 몰래 찍어 유포하는 사례도 발견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순간의 감정에 취해 찍은 섹스 동영상이 언제든 인생을 단번에 파탄 낼 수 있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섹스 동영상#p2p#웹하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