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어제 오전 서울대 강연에서 “역사상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중한 양국은 서로 도와주면서 고통을 함께 극복했다”며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전쟁터로 향했다”고 말했다. “20세기 일본 군국주의가 중한 양국에 대한 야만적 침략을 해 양국 모두 큰 고난을 겪었다”며 과거에 빗대 일본의 우경화를 경고하고 한중 공동 대응을 촉구하는 모습이었다. 글로벌공학교육센터 대강당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한 강연이어서 과학기술 발전이나 미래 비전 제시가 예상됐지만 시 주석은 일본의 침략 역사를 작심한 듯 공격했다.
그제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내년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광복 7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제안한 사실도 중국에서 먼저 보도된 뒤 국내에는 어제서야 확인됐다. 전날 채택한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기자회견에선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일본에 관한 언급이 없었는데 하루 만에 달라진 것이다. 시 주석의 서울대 강연이 ‘압박’으로 작용했는지 어제 비공식 오찬에서 박 대통령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고노 담화의 훼손 시도에 대해 시 주석과 함께 우려를 표명했다고 청와대가 뒤늦게 밝히기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과거사 부정은 중국은 물론 한국으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역사적 퇴보다. 일본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정상국가’가 되게 하려면 한중이 힘을 모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이 한국 땅에서 공개적으로 ‘일본 때리기’에 나선 배경에는 한일 관계를 더 벌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역력해 개운치 않다. 120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청일전쟁이 지금은 ‘말 폭탄’으로 재연되는 양상이다. 시 주석은 한중이 일본에 맞서 싸운 사례만 거론했지만 중국은 임진왜란 발발 44년 뒤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북한을 돕기 위해 6·25전쟁에 개입하는 등 한국을 괴롭힌 역사도 분명 존재한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그제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 방침을 밝히고 어제 각의 의결했다. 일본 언론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중 관계를 견제하려 했으면서도 어제는 “중국이 한미일 협력에 쐐기를 박으려 한다”며 불쾌감까지 전했다.
결국 시 주석은 한국을 ‘일본 때리기’에 끌어들임으로써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꾀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게 됐다. 동북아에서 세력 확대를 추구하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 이를 제어하려는 미국 사이에서 한국이 전략적 딜레마에 빠져선 안 될 일이다.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익이 손상되지 않도록 현안에 따라 한미일과 한중 공조를 놓고 ‘등거리 외교’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