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그동안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 여겨 왔다. 미국과의 직접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버퍼(buffer)’로 북한을 봐 온 것이다. 현지 관영언론들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즈음해 ‘완충지대론’을 북한에 이어 한국에까지 확장 적용하고 있다. 이는 1992년 수교 이후 유례없이 빠르게 발전해 온 한중 관계가 대립보다는 상호 의존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과 함께 중국이 남과 북을 별도로 생각하기보다는 ‘대(對)한반도 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영 환추(環球)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3일 “비록 서울과 도쿄는 워싱턴의 동맹이지만 미일 동맹은 명백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고 일본은 주동적으로 이를 부각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한국은 중미 간 분쟁을 격화하기보다는 양국 간 버퍼 역할을 할 의지가 있다”며 “이런 전략적 시각에서 보자면 남한은 중국 주변국 외교의 핵심 기둥”이라고 평가했다.
환추시보는 4일 ‘중미 관계에서 한국은 협상카드가 되기보다는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게 낫다’는 사설에서 “중국 주변국은 중미 관계의 영향력 안에 있고 이들 국가의 이익과 손해는 (중미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상당히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으며 한미 동맹과 남북 대립의 틈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뛰어나게 발전시켰다”고 진단했다.
환추시보의 분석은 한국이 중국의 자기장에 이미 편입돼 있기 때문에 ‘미중 간 균형’ 내지는 ‘중국에 좀 더 무게를 두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이는 한국의 대중국 교역액(2013년 2288억 달러)이 한일(947억 달러)과 한미 교역액(1036억 달러)을 더한 규모보다 크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동맹국인 미일과의 교역액이 과거에 전쟁을 치렀던 중국과의 교역액보다 적다는 사실은 한국이 놓인 외교적 어려움을 설명해주는 단적인 지표다. 이 신문은 실제로 “정치적으로 확실한 미국 편이 된 일본과 비교해 한국은 현저하게 많은 전략적 이익을 얻게 됐다”며 “아시아 국가가 미국 편이 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이 버팀목이 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치한 환상”이라고 평가했다. 환추시보는 특히 “중국과의 충돌을 선택하는 것은 전략적 자폭 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北京)에서 발행되는 유력지인 신징(新京)보도 5일 “중국과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완충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일부 학자들은 한중 동맹의 필요성도 제기하지만 한중 관계는 동맹과 큰 차이가 없다. 경제와 인문 교류 분야에서는 이미 동맹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 같은 압박은 한국에 대한 외교를 북한과 분리해 생각하기보다 한반도 외교라는 큰 틀에서 보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과는 이미 경제적으로 유사동맹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이 틀을 정치·안보 영역으로 확대 발전시켜 미국에 맞서는 버퍼 지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과 한국을 모두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중국 외교부가 4일 공개한 한중 정상회담 결과문에서 시 주석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객관적’ 입장을 견지한다. 각 측의 관심사를 ‘균형 있게’ 해결한다”고 강조한 것도 한반도 전략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수행기자들에게 시 주석이 이번 방한에서 ‘4개 동반자론’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공동 발전을 실현하는 동반자 △지역 평화 기여 동반자 △아시아 발전 추진 동반자 △세계 번영 촉진 동반자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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