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우리 국민에게는 가장 재미없었던 월드컵이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축구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한창이다. 그 중심에는 ‘의리 축구’라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된 홍명보 감독과 ‘홍명보의 아이들’이 있다. 2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그들은 브라질 월드컵 개막 전까지만 해도 한국 축구의 황금세대로 불렸다. 하지만 황금세대가 2년 만에 보여준 것은 한국 축구의 추락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에 참담함을 안겨준 팀 중 하나인 벨기에를 통해서 한국 축구의 희망의 불씨를 볼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28년 만에 8강 진출을 이뤄낸 벨기에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은 4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홍명보호와 비슷한 처지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벨기에 축구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4강에 진출한 그들은 황금세대로 불리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이룬 4강의 영광을 재현시켜 줄 주역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2년 뒤 이들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조차도 통과하지 못했다.
최고의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보유하고도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만을 치르고 짐을 싼 포르투갈에도 황금세대가 있었다. 1991년 루이스 피구가 이끈 포르투갈 청소년 대표팀은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황금세대가 됐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1994년과 1998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잇따라 실패했다. 두 번의 좌절을 맛본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는 자신들의 첫 월드컵 본선 무대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내심 4강 이상을 노렸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미국에 밀려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그러나 4년 뒤 은퇴까지 미룬 피구를 앞세운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는 마침내 4강 진출을 이뤄냈다.
월드컵은 20대 전후의 선수들이 나서는 청소년대회나 올림픽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대회다. 2008년의 벨기에, 1990년대의 포르투갈처럼 황금세대가 나타났다고 당장 정복할 수 없는, 임계점이 훨씬 높은 대회다. 물이 기체로 바뀌는 100도의 임계점을 돌파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열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은 올림픽 때보다 더 많은 땀과 투지와 정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대회 개막 전까지 홍 감독과 홍명보의 아이들의 생각은 부족했던 것 같다. 이번 대회 부진에 대해 홍 감독과 홍명보의 아이들은 모두 “대회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월드컵과 올림픽의 임계점 차이를 너무 작게 본 착각에 대한 뒤늦은 후회였다.
이런 부분에서 홍명보호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마땅하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많은 질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일부 인터넷 언론의 잘못된 보도와 억측을 근거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비난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홍 감독이 월드컵 개막 전 땅을 구입하면서 대회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그중 하나다. 이런 논리라면 월드컵 개막 전 애인과 화보 촬영을 한 포르투갈의 호날두는 조별리그 탈락에 대한 사죄문 발표로도 부족할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홍 감독과 홍명보의 아이들은 늦었지만 월드컵 임계점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했다. 다음 월드컵 때까지 임계점 돌파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졌다. 벨기에 황금세대가 그랬듯이 지금 흘리는 눈물은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4년 동안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비판은 하되 비난은 좀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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