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선 한국 작가 이우환의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6월 17일부터 시작된 ‘이우환 베르사유전’. 베르사유궁 정원 초입에 설치된 아치형 조형물 등 10점의 작품을 실내외에서 만날 수 있다.
베르사유궁은 2008년부터 ‘전통과 현대의 대화’를 주제로 현대미술전을 개최해 오고 있다. 올해는 이우환을 초대했다. 전시 개막 전, 프랑스에선 이우환이라고 하는 한국 작가가 베르사유궁의 무게를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로선 충분히 걱정할 만한 사안이었다. 베르사유궁의 무게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달 초 “이우환은 베르사유궁의 완벽함을 극복했다”고 상찬(賞讚)했다.
왜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이우환은 한국 프랑스 일본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의 미술 요체는 철학적 사유, 타자와의 소통이다. 그의 작품은 드러나지 않고 자연과 인간과 소통하고자 한다. 주변과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늘 겸허하다. 그 겸허함은 곧 세상에 대한 예의다. 그가 베르사유궁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무게를 무게로 극복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무게를 겸허함과 비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베르사유궁 하면 떠오르는 또 한 명의 한국인이 생겼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수배 중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유 씨가 지난해 베르사유궁 미술관에서 사진전을 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유 씨가 어떻게 이곳에서 사진전을 열었을까. 알고 보니 그 비밀은 금전적인 후원이었다. 베르사유궁에 수십억 원의 거액을 기부하고 사진을 전시한 것이다.
며칠 전 프랑스의 콩피에뉴 숲 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유병언 사진전을 취소했다. 프랑스 외교장관의 취소 요청을 받아들인 조치였지만, 조직위는 이미 유 씨로부터 1만 유로(약 14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 씨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사진박물관에도 거액의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 그의 전시는 이렇게 해서 가능했다.
국제사회에서 문화공간의 기부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전시공간을 다시 만드는 데 일본의 도쿄(東京)TV가 비용을 댔다. 로마 바티칸 시스틴성당의 천장화(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보수작업은 일본의 소니가 그 비용을 제공했다. 한국의 삼성전자는 베르사유 중앙홀에 대형 초고화질(UHD) TV를 설치했다. 모두 일종의 문화투자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유 씨의 기부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부에도 품격이 있다. 유 씨의 기부는 기부가 아니라 돈과 전시를 맞바꾼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이나 문화기관도 기부와 후원을 받는 데 열심이다. 많은 기부금을 확보하는 것이 대학과 문화기관 최고경영자(CEO)의 중요 능력이 되었다. 그런데 기부금이 정말로 절실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대학에 가보면 ○○관, ○○관처럼 기업 이름을 붙여주고 건물 짓는 데 기부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 그 귀한 돈으로 너무 외형만 치장하는 것은 아닌지.
기부는 순수해야 한다. 기부금을 쓰는 방식도 진실해야 한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세상과의 소통을 생각하며 겸허해져야 한다. 유병언의 사진이 아니라 이우환의 미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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