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출판사 대표 A 씨를 만났다. 그는 대뜸 하소연부터 했다. “요즘 출판계 사람들이나 문인들을 만나 소주 한잔 하면 다들 ‘뒤숭숭하다’고 합디다.”최근 도는 소문 때문이란다. 국내 출판계의 맏형으로 통하는 ‘민음사’의 장은수 대표 편집인(46)이 조만간 물러난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1993년 민음사에 입사한 후 편집장을 거쳐 2006년부터 대표 편집인을 맡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출판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렸던 김영사의 박은주 대표(56)가 매출 부진 등을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출판계의 대표주자 격이던 인물들마저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해 자리를 보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 대형 출판사 대표들의 연이은 퇴진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는 6월 말부터 장기 병가(病暇)를 쓰고 있다. 하지만 민음사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인 박맹호 회장의 아들 박근섭 사장이 올해 1월 일선에 복귀한 후 ‘출판사도 기업으로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흐름이 일고 있다. 내부에서 대대적 체질 개선이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박 사장은 미국 미주리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이다.
올 초 민음사는 경영 실적 악화를 이유로 일부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려고 했다가 반발이 거세자 취소하는 등 소동을 겪기도 했다. 민음사 내부에서는 장 대표의 거취는 병가가 끝나기 전후 결정되겠지만 ‘장 대표 편집인’ 체제는 없을 것이란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장 대표는 사의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몸이 아파서 쉬고 있다”며 직답을 피했다.
여기에 또 다른 대형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조직 슬림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출판계의 술렁임이 더욱 커졌다. 문학동네는 현재 200여 명인 직원을 180명 선으로 줄일 방침이다. 인위적 구조조정은 배제하고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방식으로 2, 3년간 자연스럽게 인원을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 빅4 출판사마저 흔들린다
김영사, 문학동네, 민음사, 창비는 출판사 ‘빅4’로 불린다. 이들은 매출 규모가 200억∼400억 원대이며 각 출판사마다 5∼20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 고흥식 사무국장은 “계속된 출판 시장의 위기 속에서도 대형 출판사는 비교적 ‘탄탄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마지노선까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출판팀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빅4 출판사의 경영 상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빅4 중 3곳의 당기순손실 합계가 약 31억 원에 달했다. 문학동네가 7억 원, 민음사 5억 원, 김영사는 19억 원의 당기 순손실이 발생했다(표 참조). 올 상반기 매출 역시 지난해보다 10%가량 줄어든 상태라고 이들 출판사는 밝혔다.
빅4 규모의 출판사는 ‘스테디셀러’, 즉 구간(舊刊)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김영사 출신의 한 출판인은 “30만 부 정도 팔리는 신간(新刊)이 연간 2, 3권은 나와야 회사가 유지된다”고 밝혔다. 반면 스마트폰 보급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갈수록 사람들이 책을 덜 읽는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도서 구입비는 1만8690원으로 전년(1만9026원)보다 1.8% 줄었다. 가구당 한 달에 구입한 책이 2권도 안 된다는 의미다.
빅4 출판사도 자구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과거 문학, 인문학 중심의 단행본 발간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수익’이 되는 분야에도 진출하고 있다. 창비 측은 “2010년부터 발간한 국어 교과서의 시장 점유율이 10∼20%를 오가고 있으며 교과서와 관련 서적에서 발생한 매출이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들의 부진이 ‘자업자득’이란 비판도 있다.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장은 “국내 메이저 출판사들이 돈이 되는 해외 작품을 들여오는 데 열중할 뿐 정작 국내 작가는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며 “신인을 발굴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키워 출판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다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데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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