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유증은 심각했다. 독일과의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9일(한국시간) 대부분의 브라질 국민들은 실의를 넘어 넋이 나갔다. 하루 뒤인 10일 상파울루 시내에서도 패배의 후유증은 남아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시민들과 분주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 시내는 북적였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아파트 곳곳에 걸려 있던 브라질 국기가 눈에 띄게 많이 줄었다. 노란색 브라질 유니폼도 자취를 감췄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4강전이 열린 상파울루 경기장에도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관중은 거의 없었다. 스포츠 용품점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던 브라질 유니폼도 할인에 들어갔다.
시내에서 청년들은 외국인이 지나가면 '쎄찌(sete·숫자 7)'를 외치며 손가락 일곱 개를 펴보였다. 이미 브라질 국민에게 숫자 7은 수치와 자조의 상징이 됐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숫자 7과 함께 4강전에서 부진했던 공격수 프레드와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을 조롱하는 각종 패러디가 쏟아져 나왔다.
브라질 국민에게 더 이상 축구는 축제도 희망도 아니었다. 축구 매니아를 자처하는 마르셀루 마첼라르 씨는 "한동안은 브라질 축구를 보지 않을 것 같다. TV를 틀고 노란색 유니폼을 보면 1-7 패배의 악몽이 떠오를까 두렵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여론의 후폭풍도 거세다. 브라질 연방하원은 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협회 회장과 부회장을 출석시켜 청문회를 벌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월드컵 준비 과정 등을 면밀하게 조사할 방침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잠잠했던 월드컵 유치 비판 여론과 시위도 고개를 들 전망이다. 월드컵 반대 시위를 주도한 사회단체들은 "브라질 대표팀의 참패가 월드컵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부을 것이다"고 밝혔다.
브라질 국민들은 그토록 좋아하던 축구를 통해 현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브라질의 신문기자 펠리피 마라 씨는 "브라질 축구와 경제, 정치 등 브라질의 전반적인 상황은 같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결국 문제는 어느 순간 드러난다. 이런 사실을 알게 해준 브라질 대표팀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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