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족을 승용차에 태우고 프랑스 파리 교외로 나갔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를 무심코 지났다. 그런데 뒤에서 차 한 대가 쫓아왔다. 경찰차도 아닌 일반 승용차가 쫓아오니까 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점점 속도를 냈다. 여러 개의 교차로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는데도 뒤차가 끝까지 쫓아왔다.
한 5분쯤 흘렀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차를 세웠더니 뒤차가 내 앞을 가로막고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60, 70대쯤으로 보이는 백발의 프랑스 할머니였다. 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교차로에서는 일단 멈춤을 하고 좌우를 살핀 다음에 천천히 통과해야지. 왜 그냥 가느냐”며 상기된 표정으로 일장 훈계를 하셨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존경스럽기도 했다. 당신이 가던 길도 아닌데 이런 말씀을 해주시느라고 시골길에서 내 차를 5분씩이나 뒤쫓아 오시다니….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일은 다반사다. 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들이 창문을 내리고 손짓하는 때가 흔하다. “뒷좌석에 아이가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있으니 위험하다.” “운전을 하면서 왜 휴대전화를 사용하느냐.”
한국에선 경찰도 아닌 일반 시민들이 이렇게 말하면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 “오지랖이 참 넓은 분이시네요”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에게도 뭐라고 했다간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와 관계없는 일에는 점점 더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만다.
세월호 참사도 이런 분위기가 거들었다고 볼 수 있다. 선박 운항 업주도, 선원도, 승객들도 ‘규정을 지키고 감시하는 것은 경찰이나 행정기관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젠 참사 초기에 요란했던 정부 차원의 ‘국가 개조’도, 국민들의 ‘의식 변화’도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반면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존중되는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는 안전과 관계된 일이라면 누구나 당당히 지적하고 받아들인다. 이달 9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 1면에는 프랑스 국영철도(SNCF) 열차 사고 관련 기사가 실렸다. 순간적으로 또 무슨 사고가 난 줄 알고 살펴보니 1년 전 7명이 사망한 파리 인근 열차 탈선사고의 보고서가 나왔다는 얘기였다. 오랫동안 철저히 사고 원인을 조사한 당국도 훌륭하지만 1년 전 사고를 1면에 실어 철도안전 대책을 준엄하게 지적한 언론도 대단해 보였다.
프랑스에 살면서 처음엔 복잡하고 융통성 없는 행정서비스가 답답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것이 이 나라에서 수백 명씩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현장 직원의 막강한 ‘권위’다. 관공서뿐만 아니라 케이블TV 신청접수 안내원까지 마찬가지다. 규정에 맞지 않으면 절대 타협이 되지 않는다. 우리처럼 “책임자 나오라고 해”라고 외쳐도 소용없다. 윗사람도 창구 직원이 규정을 들어 말하는데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21세기 경쟁사회를 ‘피로사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만 피로한 것이 아니다. 만인이 만인에게 ‘과로(過勞)’를 권하는 사회다. 자장면이나 통닭 배달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초스피드를 원한다. 서로 빨리빨리를 외치다 보니 사고가 터진다. 안전을 위해선 좀 느리더라도 불편을 참는 사회적 분위기를 한국도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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