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활동한 1세대 현대무용가 이정희 전 한국현대춤연구회 회장(67)과 남정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교수(62), 안신희 전 한국현대무용협회 이사(57).
이들은 30여 년 전 서울 종로구 율곡로 소극장 공간사랑에 올렸던 작품을 재구성한 ‘우회 공간’을 25, 2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11일 서울 남부순환로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세 무용가는 “연로하신 ‘언니’들이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단 하나의 공연을 준비 중”이라며 연신 웃었다. 올 시즌의 주제를 역사와 기억으로 정한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단장의 제안이 이번 공연의 출발점이 됐다.
연습실에 들어서자 강한 기운을 내뿜는 왕언니들이 매트 위에서 제각각 몸을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 씨는 “아티스트들이 연주 전 악기를 조율하듯, 무용가들에게 스트레칭은 무대에 오르기 전 치르는 의식과도 같다”고 했다. 왕언니들이 몸을 풀 때마다 관절에서 ‘뚜두둑’ 소리가 연신 나긴 했지만 몸의 유연함은 10대 소녀 못지않았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시간 동안 이들은 갑자기 드러눕고, 다리를 찢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기도 했다. 이 씨는 “환갑이 넘어서 무용가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이렇게 몸을 괴롭힌 덕분”이라며 “집에서도 늘 이렇게 살다 보니 딸들도 자연스럽게 무용가의 길을 걷게 됐다”며 웃었다. 최근 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 9’에서 자매 출연자로 유명해진 발레리나 이루다와 현대무용가 이루마가 그의 딸들이다.
현대무용계에서 ‘선생님’으로 존경받는 이들이 모인 것은 공간사랑에 대한 추억의 힘이 컸다. 남 씨는 “1970, 8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에 카페 ‘세시봉’이 있었다면, 현대무용계에는 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공간사랑’이 있었다”며 “공간사랑은 무용가뿐 아니라 장르 불문한 모든 예술가의 사랑방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 공간을 통해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처음 알려졌고, 병신춤을 추던 공옥진 같은 지방 예인들도 소개됐다.
특히 이 씨는 공간사랑 정식 개관 1년 전인 1976년에 작곡가 백병동의 ‘실내’라는 곡에 맞춰 공연했다. 공간사랑 1호 무용가인 셈이다. 그는 “라이브 음악에 맞춰 췄다”며 “현재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임헌정 예술감독이 지휘를 맡았다”고 했다. 이 씨는 이번 공연에서 ‘실내’와 1980년대 후반 작품인 ‘검은 영혼의 노래’를 수정해 관객에게 선보인다.
남 씨와 안 씨에게도 공간사랑은 특별한 공간이다. 남 씨는 1982년 파리 유학을 마친 뒤 공간사랑에서 귀국 공연을 열었고, 안 씨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뒤 1981년 공간사랑에서 프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들은 “공간사랑은 애틋한 기억과 함께 춤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심어준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 씨는 32년 전 선보였던 ‘대각선’ ‘계속’ ‘안녕하세요’, 안 씨는 ‘교감’ ‘지열’을 재안무해 무대에 올린다. 이들은 “희한하게도 수십 년 전 작품을 몸은 기억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들은 현대무용이 어렵다고 여기는 관객들을 위해 작품에 대한 배경과 특징도 설명할 예정이다. 안 씨는 “족집게 과외처럼 현대무용을 쉽고 재미있게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석 3만 원. 02-347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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