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북과 추가적인 대북 제재 해제를 경고하고 나선 것은 아베 정권에 대한 누적된 불신감 때문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집권한 뒤 오키나와(沖繩) 현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밀어붙여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해 12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5월 29일 북-일 합의 발표 등으로 미국의 뒤통수를 쳐왔다. 이번 경고는 독자 행보를 강화하는 일본을 더이상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놀란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을 다음 주 미국에 보내는 방안을 타진 중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케리 장관을 직접 만나 일본의 북-일 교섭 방침을 해명하겠다는 것이다. 교도통신은 “납치 문제 조기 해결과 미일 동맹 강화를 병행하려는 아베 총리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북한 방문으로 한국과 중국을 견제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밀어붙여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려던 아베 총리의 행보가 미국의 경고로 급제동이 걸릴 수 있게 됐다. 일본 정치권 안팎에서는 아베 총리의 8월 말 또는 9월 초 방북 관측이 파다했다. 북한이 1차 납북자 조사 결과를 내놓기로 했고 아베 총리가 이때 예정했던 중앙아시아 순방을 취소한 때문이다.
여기에는 아베 총리가 방북해 납북 생존자들을 일본으로 데려오면 지지율을 단숨에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도 2002년 2월 지지율이 20%포인트 이상 떨어졌지만 9월 방북해 납북자 일부를 귀국시키면서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당시 관방 부장관이던 아베 총리가 이를 곁에서 지켜봤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방북 뒤 기세를 몰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판에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미국 설득 작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기시다 외상의 방미 타진도 이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한편 아베 총리는 1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 출동에 대해 “일본이 양해하지 않으면 한국 구원을 위해 달려갈 수 없다”고 답했다. 한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문제 삼으면 급할 때 도와주지 않겠다는 협박으로도 비칠 수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미일 양국은 1960년 안보조약 개정 당시 주일미군이 사전 협의 없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밀약했다고 2010년 민주당 내각이 발표했다. 한국 군 관계자도 “주일 미군기지와 유엔사 후방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보급 등의 역할을 한다.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 전력의 전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등 한미 양국의 기존 합의에 따라 계획대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날 기시다 외상은 한반도 유사시 6·25전쟁 때 편성됐던 유엔군이 활동을 재개하면 자위대가 기뢰 제거와 유엔군 함선 경호 등에 참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이때도 한반도 영해에 자위대가 진입하려면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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