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회기를 마친 6월 임시국회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7·30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이구동성으로 민생을 외쳤지만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놓고 맞서면서 정작 중요한 법안은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6월 국회에서 ‘처리’한 7건도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이 아니라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다가 의원들이 스스로 ‘철회’한 케이스다. 5, 6월 통틀어 법안 처리는 단 한 건도 못했다는 얘기다. 제헌절이 무색한 우리 국회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 여야, 법안소위 복수화 놓고 양보없는 공방
특히 지난달 24일 19대 하반기 원구성이 이뤄졌음에도 20여 일간 여야는 법안심사 등을 위한 소위원회 구성조차 제대로 못했다. 동아일보가 17일 국회 상임위원회 18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9개 상임위에서 소위원회 구성을 완료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급부상한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을 심사해야 할 정무위원회도 법안심사소위가 구성되지 않았다.
안전행정위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법안심사소위는 고사하고 예산결산소위를 포함한 소위원회를 아예 구성하지 못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주요 민생법안을 다루는 기획재정위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환경노동위 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법안소위 복수화 여부를 놓고 여야가 양보 없는 공방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신속한 법안 심사를 위해서는 소위원회가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새누리당은 전례가 없으며 소위 권한을 약화하려는 과도한 요구라며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 새누리당, 중점 법안 처리 ‘제로’
새누리당은 6월 국회에서 법안 121건을 우선 처리하려 했지만 결과는 빈손이었다.
이날 본보가 입수한 ‘상임위별 주요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 안전’ 분야 관련 법안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올 2월 경북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를 계기로 특정관리대상 지정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발의됐지만 안전행정위에 상정되지 않았다. 아울러 집중호우 등으로 인한 산사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담은 ‘급경사지 재해 예방법’ 개정안과 화재 발생 시 신속한 대피를 유도하기 위한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도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주요 법안 121건 가운데 41건은 이미 두 달 전인 4월 국회 때도 우선 처리 법안으로 분류됐던 사안들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 법안으로 5월 국회 때는 무엇을 했느냐는 빈축을 자초하고 있다.
○ 새정치연합, 5대 법안에만 매몰
야당 지도부가 특정 법안의 처리에만 몰두하면서 민생 현안 법안을 다루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 법안이 세월호 특별법, 김영란법, 유병언법(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 안대희 방지법(공직자 윤리법), 의료민영화 방지법(의료법) 등 5개다.
특히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과 다른 민생법안 처리를 사실상 연계하면서 원전 관련 안전 법안과 지방선거 공약 관련 법안 등이 처리되지 못했다. 당 관계자는 “세월호 특별법의 6월 국회 통과가 무산되면서 야당에서 추진한 핵심 법안은 하나도 처리하지 못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앞서 박영선 원내대표가 지난달 12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노후 불안, 주거 불안, 청년실업, 출산보육 불안, 근로빈곤 등 5대 신사회위험 해결을 위한 법안을 적극 입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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