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한 엘리트 돼야” 高卒장관 마지막 날까지 일정 마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3일 03시 00분


‘상고-야간대 신화’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사의 표명

상고 출신으로 장관직까지 올라 ‘고졸 신화’를 쓴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 22일 사의를 표했다. 동아일보DB
상고 출신으로 장관직까지 올라 ‘고졸 신화’를 쓴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 22일 사의를 표했다. 동아일보DB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 공직에서 물러난다. 1982년 상고 출신 은행원 신분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명문대 출신들이 즐비한 관료사회에서 장관직까지 오르는 ‘고졸 신화’를 써내려간 지 32년 만이다.

국무조정실은 22일 김 실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제2차관과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내며 건강이 나빠졌고, 지난해 장남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은 가족을 직접 돌보기 위해 자진해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미 올 초부터 수차례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청와대가 반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이날 직원들에게 배포한 이임사에서 “짧지 않은 기간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할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큰 축복이었다”며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열심히 생각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공직자들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충북 음성군 출신으로 올해 57세인 김 차관의 사회경력은 40년에 이른다. 11세 때 부친을 잃고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 살 정도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덕수상고를 졸업하자마자 홀어머니와 세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다. 8년간 은행 등에서 일하면서 야간대학이던 국제대(현 서경대)에 다니다가 1982년 국회 사무관을 뽑는 입법고시(6회)에 합격했다. 같은 해 행정고시(26회)에도 붙어 이듬해 3월 경제기획원(EPB)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실장은 공직에 처음 입문했을 당시 “요즘은 저런 학교 출신도 오느냐”라는 뒷말을 듣기도 했다. 명문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대부분인 경제부처에서 ‘비주류’로 출발했지만 그는 치밀한 업무능력으로 학력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했다.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에서 공직을 시작한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재정경제비서관, 경제금융비서관,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일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기재부 예산실장을 거쳐 제2차관을 지내며 여야 정치권의 무상복지 공약에 강력히 제동을 거는 등 재정건전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여당의 정책조차 때로 제동을 거는 모습에 새 정부에서 큰 역할을 맡기 힘들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그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취임했다. 김 실장은 국정과제 점검체계인 ‘신호등 평가제도’를 만들고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는 등 부처 간 정책조정과 규제개혁을 총괄해왔다.

특히 김 실장은 지난해 10월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장남을 떠나보낸 뒤 발인한 당일 오후 출근했고, 다음 날 원전비리 근절대책을 직접 발표하는 등 업무에 철두철미한 면모를 보였다. 나중에 장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에 큰 구멍이 난 것 같기도 하다”라며 뒤늦게 슬픔을 전했다.

그는 공직생활 마지막 날인 22일에도 오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오후에는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신임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공직관(公職觀)’을 주제로 강의했다. 김 실장은 이날 강의에서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가슴이 없다면 진정한 엘리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후임 국무조정실장으로는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추경호 이석준 기재부 1, 2차관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르면 23일 발표될 예정이다.

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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