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여당 두 김 씨와 대한민국 역사

김무성 주도의 역사교실 참가자들
대한민국史 왜곡과 잘못된 교육의 심각성을 똑똑히 알게 되었는지…
김문수 주도의 ‘경기도 현대사’사업
대한민국 정체성을 쉽게 이해할 이영훈 교수의 역작으로 열매 맺어
保守혁신은 보수가치 포기 아니다… 자유민주 이념의 복원부터 해야

배인준 주필

지난해 9월 4일 아침 국회의원회관 회의실에 새누리당 의원 절반 이상이 모여 ‘근·현대 역사교실’이라는 세미나를 가졌다. 전문가를 모셔 강의를 듣고 의견을 나눈 연구모임은 작년 12월 18일까지 국정감사 기간을 빼고는 매주 열렸다.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고, 주로 현직 의원인 참여자가 120명까지 되다 보니 ‘김무성 세(勢) 결집용’이라는 정치적 해석이 따랐다.

정치인에게 정치적 의도를 시비하는 것은 기업인더러 돈 벌지 말라는 것과 같다. 내가 궁금했던 점은 ‘헌법·안보·통일·경제·복지·교육 같은 다른 종목도 많은데, 왜 역사를 마중물로 삼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념과 역사관의 기회주의자가 많아 보이는 새누리당에서 그런 모임이라도 생기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김 의원은 발족 인사말에서 “좌파들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못난 역사로 비하하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역사를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래서 이석기 사태 같은 것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쉽게 예상된 대로, 당시 민주당과 종북을 비롯한 좌파세력은 ‘대한민국 건국을 긍정하는 교과서’ 죽이기의 연장선에서 김 의원을 비난했다. 김 의원은 역사교실 종강 때 “자기들과 다른 역사관을 말한다고 해서 죄 없는 출판사 사장에게까지 ‘목을 따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고 되받았다. 우리 근·현대사가 대한민국 부정·폄훼 세력에 의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고 후세들을 잘못 가르쳐 왔는지, 새누리당 역사교실 참가자들이 많이 공부했기를 나는 바랐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재임 시절, 적지 않은 공무원들이 우리 역사를 잘 모르거나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데 놀랐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누가 세웠나, 하고 물으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 또는 그를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답할 줄 알았는데 이승만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백 명 중 서너 명일 때도 있었던 모양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세웠다’고 하면 틀리지 않지만, “이성계!”라고 하는 공무원까지 더러 있었다는 후문이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삭제하고 조선사와 대한민국사를 이어붙이면 조선 개조(開祖) 이성계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우고 싶은 역사도 역사는 역사이다. 아픈 역사일수록 직시하면서 교훈을 찾는 것이 옳다.

경기도문화재단은 2012년 도내 공무원 교육용으로 ‘경기도 현대사’를 편찬했다고 한다. 그 1부가 대한민국 편이고 2부가 경기도 편인데 1부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집필했다. 경기도는 1부를 ‘새로운 대한민국사’라는 별책으로도 묶어 역사 바로 알리기에 활용했다. 나도 그 책을 읽을 기회가 있어 공부를 했다. 이 교수는 작업 끝에 작년 7월 ‘대한민국 역사·나라만들기 발자취 1945∼1987’이라는 책을 냈다. 이 저작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정통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역사서라는 평가를 들었으며 경암학술상 등의 상도 받았다.

광복 후 분단을 향해 먼저 달린 것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이었고, 소련의 스탈린은 공산주의 세계혁명을 위한 유리한 국제정세 조성을 목적으로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했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을 구하기 위해 참전해 6·25전쟁을 참혹한 국제전으로 비화시켰다. 이는 구소련 문서 등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실이다. 이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런 서술도 했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세력과 국내에서 근대문명의 실력을 양성한 세력이 훌륭한 것은 그들의 인격과 처신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인격과 처신에는 흠결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훌륭한 것은 선택한 이념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보수(保守)의 혁신’을 내걸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러운 것은 지키고, 부끄러운 것은 교훈으로 삼으며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보수의 혁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보수의 가치를 이제라도 복원하고 진화시키는 일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서조차 흔들려온’ 보수정당의 절실한 자기혁신 과제이다. 대한민국 부정론자와 유사 정치세력의 왜곡·선동에 휘둘려 국가 정체성마저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수의 혁신이 아니라 보수의 자살이다. 우선 김문수 김무성을 지켜보겠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